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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레코드와 조선악극단오케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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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튜디오

1945년 이전 조선에서 활동한 음반회사들은 대부분 도쿄(東京)나 오사카(大阪)에 본사가 있는 일본 음반회사의 지점이나 영업소였으므로, 독자적인 녹음 설비를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1935년 이전에는 마이크로 녹음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상설 스튜디오가 조선에 사실상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일본 본사까지 가서 녹음을 하거나 일본 본사에서 기술자와 기계 설비를 들여와 임시로 설치한 녹음실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오케(Okeh)레코드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1933년 11월과 1934년 2월에는 오사카에서, 1935년 1월과 1936년 2월에는 도쿄에서 녹음을 했다는 신문 기사가 확인된다. 일본 본사에서 녹음을 하는 사이사이에 서울에서도 임시 녹음실을 설치해 운영하기도 했는데, 1935년에 이루어진 조선어교육레코드와 소프라노 정훈모(鄭勳謨)의 녹음이 대표적인 예이다. 당시 오케레코드의 임시 녹음실은 경성 명치정(明治町)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인 기사가 고가의 장비를 가져와 설치해 운영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36년 말에는 드디어 정식 스튜디오를 남대문통 1정목(丁目) 104번지 오케레코드 본사에 설치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1937년 초부터 발매된 오케레코드 음반은 모두 조선인이 직접 편곡과 반주를 맡아 하게 되었다. 1936년에 어떤 경위로 스튜디오가 개설되었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으나, 본사 역할을 했던 데이치쿠(帝蓄)레코드가 조선 시장에 대한 관심을 높인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스튜디오 설치와 비슷한 시기에 이철(李哲)의 오케레코드 운영권이 데이치쿠레코드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남대문통 오케레코드 스튜디오는 1941년까지 운영되었으나, 1941년 1월에 발생한 화재로 인해 스튜디오 시설이 손상을 입게 되었다. 그에 따라 1941년 5월 중순에는 서울 다옥정(茶屋町) 92번지에 오케레코드 사옥이 신축되었는데, 여기에 새로운 스튜디오도 함께 입주하게 되었다. 새로운 스튜디오 개설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그리고 전시체제 강화라는 당시 시국 상황을 반영하는 의미에서 1941년 6월에는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郞)가 녹음을 하기도 했다. 다옥정 스튜디오에서는 왁스 원판을 깎아 녹음하는 과정을 조선인 녹음기사가 담당했다고 한다.

오케레코드 스튜디오는 1943년까지 계속 운영이 되었으나, 음반 생산이 사실상 중단된 1944년 이후로는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