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오케레코드와 조선악극단참고영상-영화

연관목차보기

참고영상-영화

문화영화

출연 : 고복수 외
분류 : 영화
제작사 : 국립영화제작소
개봉일 :1959

<흘러간 옛 노래>

문화영화 <흘러간 옛 노래>는 1959년 11월에 만들어져 상영되었다. 여타 문화영화나 대한뉴스와 마찬가지로 상업적인 목적으로 제작된 것은 아니며, 1950년대 이전 대중가요 공연의 실제 모습을 유추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공연 실황을 촬영한 것이 아니고 소리도 일부 덧입힌 것이 분명하기는 하지만, 영상으로서 분량이 상당하므로 사료적 가치가 높은 편이다. 영화 내용은 무용과 노래로 구성되어 있는데, 노래는 모두 여덟 곡이 등장한다. 제목과 가수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풍년송> - 고복수(高福壽)·황금심(黃琴心)
<황성 옛터> - 남인수(南仁樹)
<알뜰한 당신> - 황금심
<타향살이> - 고복수
<목포의 눈물> - 이난영(李蘭影)
<마상일기> - 진방남(秦芳男)
<아리랑 낭낭> - 백난아(白蘭兒)
<신라의 달밤> - 현인(玄仁)

이 가운데 오케(Okeh)레코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은 앞에 나오는 다섯 건이라 할 수 있다. <아리랑 낭낭>과 <마상일기>는 1945년 이전 작품이기는 하나 오케레코드가 아닌 태평(太平)레코드에서 발매된 작품이고, <신라의 달밤>은 광복 이후 작품이라 오케레코드와 관련이 없다.



<풍년송>

<풍년송>은 김용호(金用浩) 작사, 문호월(文湖月) 작곡으로 1938년 1월에 발표되었다. 처음 음반을 녹음한 가수는 고복수와 이은파(李銀波)이지만, 무대에서는 고복수와 다른 여가수가 함께 부르기도 했다. 예컨대 1939년 일본 공연 당시에는 김정숙(金貞淑)이 이은파 대신 고복수와 듀엣이 되었다. 고복수와 황금심이 결혼한 이후로는 부부의 대표적인 레퍼토리가 되기도 했다. 화면상으로는 고복수가 장구를, 황금심이 꽹과리를 연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연주보다는 소품으로서 의미가 더 큰 편이다.



<황성 옛터>

<황성 옛터>는 왕평(王平) 작사, 전수린(全壽麟) 작곡으로 1932년 4월에 발매되었다. 빅타(Victor)레코드에서 이애리수(李愛利秀)가 처음 불렀으므로 오케레코드와는 아무 관련이 없으나, 가수 남인수의 보기 드문 영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932년 발매 당시 제목이 <황성의 적(跡)>이었던 <황성 옛터>는 이애리수의 노래로 히트하기도 했지만, 남인수의 <황성 옛터>로도 못지않게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황성 옛터>를 남인수의 노래로 알고 있기도 하다. 남인수의 <황성 옛터>는 원곡과 비교해 볼 때 가사와 곡조에 약간의 차이가 있기도 하다. ‘가요황제’ 남인수의 가창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알뜰한 당신>

<알뜰한 당신>은 조명암(趙鳴岩) 작사, 전수린(全壽麟) 작곡으로 1938년 1월에 발표되었다. 빅타레코드에서 발매한 곡이므로 오케레코드와 직접 상관은 없으나, 가수 황금심이 불렀다는 점에서 간접적인 의미가 있다. 황금심은 <알뜰한 당신>으로 빅타레코드에서 데뷔하는 동시에 오케레코드 1938년 1월 신보 <지는 석양 어이하리>를 황금자(黃錦子)라는 이름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두 음반회사에서 동시에 데뷔를 하게 된 셈인데, 실은 오케레코드에서 먼저 발굴한 황금심을 빅타레코드에서 가로챈 것이었다. 오케레코드로서는 뼈아픈 기억이 있는 곡이라 할 수 있다.



<타향살이>

<타향살이>는 김능인(金陵人) 작사, 손목인(孫牧人) 작곡으로 1934년 6월에 발표되었다. 발표 당시의 원래 제목은 <타향>이나, 이후 <타향살이>로 굳어지게 되었다. 1937년 1월에는 이연신(李燕信)이라는 가수가 <타향살이>로 다시 녹음해 발표하기도 했다. 구구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고복수의 대표작이며, 영상을 통해서도 발표 당시 공연 무대의 정취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고복수 뒤편으로 상당한 규모의 관현악단이 연주를 하고 있으나, 실연이 녹음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악단 지휘는 작곡가 박시춘(朴是春)이 맡았다.



<목포의 눈물>

<목포의 눈물>은 1935년 9월 신보로 발표된 이난영의 대표곡이다. 문일석(文一石) 작사, 손목인 작곡이며, <타향살이>와 마찬가지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 대중음악사의 걸작이다. 영상을 보면, 연륜이 느껴지는 세련된 손 처리 하나만으로도 이난영의 원숙한 기량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화면상으로는 기타와 아코디언 반주만 있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기타 연주자는 박시춘), 실제 녹음은 관현악단 반주이다.

반도의 봄

감독 : 이병일
출연 : 이재호 외
분류 : 영화
제작사 : 명보영화사
개봉일 : 1941

1940년에 개봉한 <반도의 봄>과 1944년에 개봉한 <병정님(兵隊さん)>은, <노래 조선>이나 <思ひつき夫人>과 달리 오케(Okeh)레코드·조선악극단과 직접 관련이 있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두 영화에는 지금으로서는 그 실체를 파악하기 매우 어려운 1945년 이전 대중음악 공연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 화면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


<반도의 봄>

<반도의 봄>에서는 세 장면 정도가 대중음악과 관련이 있다. 우선, 카페에서 극중 인물들이 담화를 나누는 장면에 잠깐 단역으로 등장하는 아코디언 연주를 들 수 있다. 당시 카페는 이른바 ‘모던’한 문물이 집결하는 장소였다. 대중음악 역시 음반이나 실연을 통해 카페에서 유통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반도의 봄>에 나오는 장면이 그 일례가 된다. <목포의 눈물>을 능숙하게 연주하는 아코디언 연주자는 바로 작곡가 이재호(李在鎬)이다. 이재호는 1930년대 말부터 오케레코드의 최대 경쟁사였던 태평(太平)레코드에서 주축 작곡가로 활동한 인물이나, 이후 남촌인(南村人)이라는 예명으로 오케레코드에서도 작품을 몇 곡 발표하기도 했다.

<반도의 봄> 주제가 <망향초 사랑>이 태평레코드에서 발매되었기 때문에, 이재호 출연을 비롯해 영화 곳곳에 태평레코드 관련 장면이 등장한다. 가수 겸 배우로 활동한 최남용(崔南鏞)도 영화 속 음반회사의 작곡가로 출연을 하고 있다. 최남용이 등장하는 장면 가운데 한 대목은 음반회사 사무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실제 오케레코드의 사무실은 아니지만, 당시 음반회사가 어떤 공간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유추하는 데에는 좋은 참고 자료가 된다. 영화 속 음반회사와 마찬가지로 오케레코드도 사옥에 녹음 스튜디오를 갖추고 있었다.

<반도의 봄> 말미에는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 김소영(金素英)이 무대에서 주제가 <망향초 사랑>을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일종의 립싱크를 한 관계로 가수 백난아(白蘭兒)의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김소영이 입을 벙긋거리는 어색함이 보이기도 하지만, 전반적인 공연 장면은 당시 무대를 재구성하는 데에 많은 참고가 된다. 김소영 뒤로는 10인조 악단이 연주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당시 직접 무대에서 활동한 인사들의 증언을 들어 보아도 대략 관현악단이 대략 12인조 내외로 구성되는 것이 보통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병정님

감독 : 방한준
출연 : 마금희 외
분류 : 영화
제작사 : 조선영화
개봉일 :1944

1940년에 개봉한 <반도의 봄>과 1944년에 개봉한 <병정님(兵隊さん)>은, <노래 조선>이나 <思ひつき夫人>과 달리 오케(Okeh)레코드·조선악극단과 직접 관련이 있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두 영화에는 지금으로서는 그 실체를 파악하기 매우 어려운 1945년 이전 대중음악 공연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 화면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


일제시대 말기에 개봉한 <병정님(兵隊さん)>에는 군대 위문공연 장면이 참고가 된다. 물론 <병정님(兵隊さん)>에 등장하는 위문공연은 대중음악 중심의 공연이 아니기 때문에 직접 관련도는 높지 않지만, 당시 무대가 복합적인 구성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기도 했기 때문에 참고 되는 바도 적지 않다. 서양음악 성악(마금희(馬金喜), 히라마 분주(平間文壽)), 서양음악 기악(계정식(桂貞植)), 대중음악 성악(리샹란(李香蘭)), 무용(조택원(趙澤元)), 합창(<日本男兒>) 등이 다양하게 등장하는 무대는, 예컨대 조선악극단이 만주나 중국에서 공연할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장면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야외 임시 무대는 제대로 된 극장 설비가 없는 곳에서 공연이 치러지는 모습을 충분히 보여 주고 있다.

思ひつき夫人

감독 : 脔藤寅二郞
출연 : 조선악극단 외
분류 : 영화
제작사 : 동보영화사
개봉일 :1939

영화 <思ひつき夫人>의 조선악극단 출연

일본 영화사 도호(東寶)에서 제작해 1939년 5월에 개봉한 영화 <思ひつき夫人>은, 비록 일본 영화이기는 하고 영화 줄거리 자체도 조선과 아무런 관련이 없기는 하나, 일종의 눈요기로 조선악극단 공연 장면이 삽입되어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자료이다.

전체 상영 시간이 약 70분에 이르는 <思ひつき夫人>에서 조선악극단 출연 장면은 5~6분 정도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당시 조선악극단의 주요 멤버들의 모습을 거의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조선악극단 출연 장면은 우선 극장 간판이 보이는 화면에서 시작한다. ‘조선악극단’이라는 글씨와 함께 공연 장면 몇 대목을 그림으로 그려 놓았다. 이어지는 첫 공연 장면은 무대 출연자 모두가 합창하는 <아리랑> 후렴 부분이다. 메기고 받는 일반적인 민요 가창 방식에 따라 이어서 이난영이 독창으로 <아리랑>을 부르고 한 번 더 모두 함께 부르는 후렴이 뒤따른다. 이난영 다음으로 독창을 맡은 남인수가 한 절을 부르고 나면 역시 모두 함께 후렴을 다시 한 번 부른다. 다음 짧은 장면에서는 극중 인물들이 간단한 대화를 나눈다.

공연의 두 번째 장면은 이화자의 독창이다. 곡목은 이화자의 대표작인 <꼴망태 목동>인데, <아리랑>과 더불어 일본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신민요로 선곡한 듯하다. 당시 신문 기사에서도 이난영과 이화자 출연했음을 강조해 보도했다. 이어지는 짧은 장면 역시 극중 인물들의 간단한 대화이다.

다음 장면은 한복 차림으로 나선 김정구가 부르는 <돈타령>이다. 김정구 뒤편으로는 작곡가 손목인 지휘하는 조선 최고의 재즈밴드 C.M.C악단이 연주를 하고 있다. 일본 언론으로부터 인기가 너무 높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평을 받았다는 김정구 절정기의 모습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역시 이어서는 인물들간 대화가 잠시 이어진다.

공연의 마지막 장면은 장구를 멘 고복수와 꽹과리를 든 김정숙이 앞에 서고 모든 출연자들이 뒤에서 후렴 합창을 하는 <새날이 밝아 오네>이다. 1960년에 제작된 문화영화에서도 장구를 멘 고복수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思ひつき夫人>의 장면이 그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후렴을 합창하는 가수들 가운데 소고를 든 남인수, 이난영, 장세정, 김정구 등이 모두 보이며, 마지막에 앞으로 나서 긴 댕기머리를 휘날리며 춤을 춘 사람은 김능자 또는 홍청자로 추정된다.

조선악극단이 <思ひつき夫人>에 출연하게 된 이유는 1939년 봄에 두 달 간 이루어진, 조선악극단이라는 이름을 걸고 진행한 최초의 일본 순회 공연이 마침 영화 제작 기간과 맞물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시 조선악극단은 일본 굴지의 흥행업체인 요시모토와 제휴해 공연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요시모토와 도호가 접촉해서 영화 출연이 성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연 장소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요시모토에 속하는 도쿄나 오사카 소재 가게쓰게키조였을 것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