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오케레코드와 조선악극단검열과 금지

연관목차보기

검열과 금지

오케(Okeh)레코드에서 발매한 음반, 조선악극단에서 공연한 쇼·악극 가운데에는 시대적 여건으로 인해 발매금지나 공연중지 처분을 당한 예들이 적지 않다.

음반의 경우 1933년 5월에 조선총독부에서 ‘축음기레코드 취체(取締)규칙’을 제정한 이후 가사 내용이 치안을 방해하거나 풍속을 어지럽힌다고 판단되면 금지 처분을 당했고, 공연은 주로 현장의 무대 상황이나 악극 대본의 내용이 문제가 되어 검열에 걸렸다. 치안을 방해한다는 것은 대체로 사회주의나 민족주의를 조장할 우려가 있는 내용을 의미했고, 풍속을 어지럽힌다는 것은 대개 성적인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내용과 관련이 있다.

오케레코드와 조선악극단의 작품 가운데 검열·금지의 흔적이 보이는 경우는 아래와 같이 확인된다.

우선, 오케레코드에서 발매한 음반 가운데 문헌자료를 통해 금지가 확인된 경우는 다음과 같다.

<아래 도표 참조>

이 가운데 대중음악과 관련 있는 것는 유행소곡, 만요, 유행가, 가요비극 종류에 속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장한가>, <타향의 술집>, <기로의 황혼>, <편지와 전화>, <겁쟁이 촌처녀>는 가사를 전체 또는 일부 확인할 수 있으므로 금지된 구체적인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장한가>(신불출(申不出) 작사, 문호월(文湖月) 작곡, 윤백단(尹白丹) 노래)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장수를 죽인 의기(義妓) 논개(論介)와 계월향(桂月香)을 노골적으로 칭송한 가사 내용이 조선인의 민족의식을 자극해 치안을 방해할 수 있다고 판단되어 금지를 당했다. <장한가>의 금지로 같은 음반 뒷면에 실린 <사발가>까지 판매를 할 수 없게 된 오케레코드는 <장한가> 대신 <신개성난봉가>를 넣은 음반을 1933년 10월 신보로 다시 발매해 판매를 재개했다. <장한가>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논개가 그리워라 남강물만 푸르러
촉석루 옛 다락에 옷깃 잡던 바람이
지금에 어느 하늘 흐르고 있느냐

계월향 그리워라 모란봉만 높구나
능라도 버들로도 그대 매기 어려워
갸륵한 일편단심 볼 길이 없어라

황진이 그리워라 박연폭포 물소리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 의시은하락구천(疑是銀河落九天)
어데가 그대 문장 짝 진다 말인가

<타향의 술집>(조명암(趙鳴岩) 작사, 이시우(李時雨) 작곡, 김정구(金貞九) 노래)은 <눈물 젖은 두만강>으로 주목을 받은 이시우·김정구 콤비가 후속작으로 내놓은 곡이다. 특별히 문제가 될 만한 대목은 보이지 않으나, 1937년 7월 중일전쟁 발발 이후 전시체제가 강화된 사회 분위기가 작용해 비탄적인 내용이 검열에 걸렸던 것으로 짐작된다. 비교적 가벼운 경우라 할 수 있는 가두연주금지 처분을 받기는 했으나, 그 금지 때문인지는 몰라도 작곡가 이시우는 곧 작곡 활동을 그만두고 말았다. 한동안 가요계를 떠났던 이시우는 광복 이후 195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작곡 활동을 재개했다. <타향의 술집> 가사는 다음과 같다.

흘러온 타향 하늘 날이 저문 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외로이 우노니
눈물도 하염없어라 갈 데 없는 신세랍니다

한 잔의 술이나마 눈물 없이 마시리오
사랑도 이별하고 고향도 등진 몸
취하면 취한 그대로 주정하는 신세랍니다

물에 뜬 거품처럼 속절없는 세상에서
슬퍼도 괴로워도 웃어야 하느냐
술잔에 남실거리는 네온 빛도 식어 갑니다

<기로의 황혼>(조명암 작사, 박시춘(朴是春) 작곡, 남인수(南仁樹) 노래) 또한 <타향의 술집>처럼 특별히 문제가 될 만한 대목은 보이지 않는다. 역시 1938년 당시 경직된 사회 분위기 때문에 지나치게 비관적이라는 점이 검열 당국의 눈에 거슬렸던 것으로 보인다. 노골적으로 문제가 되는 곡이 아니기에 비교적 강도가 약한 가두연주금지 처분을 받았다. <기로의 황혼>은 광복 이후 1965년에 월북작가 작품들이 일괄적으로 금지를 당할 때 다시 한 번 방송 금지곡 리스트에 오르는, 그것도 1번으로 오르는 기구한 운명을 맞기도 했다. <기로의 황혼> 가사는 다음과 같다.

그러냐 그러냐 뜬 세상 인심이란 모두가 그러냐
흩어진 인정이요 흩어진 사랑이언만
부평 같은 내 신세 흘러가는 내 팔자엔
인정도 없고 돈도 없고 사랑도 없다

그러냐 그러냐 낯설은 타관이란 모두가 그러냐
들어찬 사랑이요 들어찬 술집이언만
봄을 등진 내 한 몸 버림받은 내 앞에는
사랑도 없고 길도 없고 술집도 없다

그러냐 그러냐 실없는 애정이란 모두가 그러냐
쌔 버린 웃음이요 쌔 버린 눈물이언만
얼이 빠진 내 마음 넋이 빠진 내 얼굴엔
웃음도 없고 피도 없고 눈물도 없다

1939년에 발매된 <편지와 전화>(조명암 작사, 손목인(孫牧人) 작곡, 장세정(張世貞) 노래)는 대중가요로서 풍속을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금지 처분을 당한 드문 경우이다. 당시 풍속 문제 때문에 금지가 되는 경우는 판소리나 잡가에 더 많았다. 젊은 남녀의 실랑이를 소재로 하고 있는 <편지와 전화> 가사 내용이 특별히 성적으로 문란하다고 할 수는 없을 듯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지까지 당한 데에는 장세정의 목소리가 듣기에 따라 상당히 섹스어필하다는 점이 작용했던 것 같다. <편지와 전화> 가사는 다음과 같다.

요 전엔 불이 나게 편지를 하고
요즘은 신이 나게 전화를 건다
아이구 망측해 아이구 귀찮아
사람이 만만하니 별 일을 다 보겠네
누가 알아 누가 알아 나는 나는 몰라요
정말이지 나는 싫어

어제는 영화 구경 가자고 졸라
오늘은 찻집으로 가자고 졸라
아이구 망측해 아이구 귀찮아
얼굴이 반반하니 못 살게 야단이야
나는 싫어 나는 싫어 나는 나는 못난이
정말이지 나는 싫어

편지를 할 때면은 구슬픈 사정
전화를 걸 때면은 OO가 OO
아이구 이상해 아이구 얄궂다
답장을 보내라고 성화를 부리지만
나는 몰라 나는 몰라 나는 나는
정말이지 나는 싫어

<편지와 전화> 뒷면에 실려 발매된 <겁쟁이 촌처녀>(조명암 작사, 손목인 작곡, 이화자(李花子) 노래) 역시 풍속괴란이 금지 이유이다.

앞집의 떠꺼머리 총각 뒷집의 OO머리 처녀
장가를 간대지 시집을 간대지
에이구머니나 저를 어째 데이구머니나 저를 어째
두근두근 두근두근 에구머니 나는 싫어요
가슴이 두근두근 나는 싫어 나는 싫어 나는 몰라 나는 몰라
OO만 떠돌아도 얼굴이 화끈화끈
나는 겁쟁이 나는 겁쟁이

네거리 하이카라 총각 삼거리 고수머리 처녀
OO를 한대지 혼인한대지
에이구머니나 저를 어째 데이구머니나 저를 어째
조마조마 조마조마 에구머니 나는 싫어요
머리만 조마조마 나는 싫어 나는 싫어 나는 몰라 나는 몰라
OO만 OO어도 OO가 두근두근
나는 겁쟁이 나는 겁쟁이

살구집 늙은 총각 앵두집 나물 캐는 처녀
댕기를 보낸다 염낭을 보낸다
에이구머니나 저를 어째 데이구머니나 저를 어째
두근두근 두근두근 에구머니 나는 싫어요
이런 소문 저런 소문 나는 싫어 나는 싫어 나는 몰라 나는 몰라
OO이 OOOO 가슴이 울렁울렁
나는 겁쟁이 나는 겁쟁이

이밖에 금지되었다는 기록이 분명하게 확인되는 것은 아니나, <목포의 눈물>이나 <연락선은 떠난다>, <낙화삼천> 같은 곡들도 검열 또는 금지와 관련이 있다는 증언이나 흔적이 보인다.

<목포의 눈물> 가사지를 보면 제2절 가사 첫 대목이 ‘삼백연(三栢淵) 원안풍(願安風)은 노적봉(露積峰) 밑에’라고 되어 있는데, 원래 가사는 ‘삼백 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였다고 한다. 실제 가수 이난영(李蘭影)의 목소리를 들어 보아도 후자로 들리기는 하는데, 그 내용이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사적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사전 검열에서 문제가 되어 발음이 비슷한 가사지 표기로 고쳤다고 한다.

<연락선은 떠난다>는 가사지에 기록된 가사와 현재 남아 있는 음반에 녹음된 가사가 서로 다른 부분이 많은 것으로 보아 검열에 걸려 다시 녹음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연락선은 떠난다>는 가수 장세정(張世貞)의 창법이 지나치게 에로틱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 문제가 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다.

<낙화삼천>은 군국주의를 선전하는 영화 <그대와 나(君と僕)>의 삽입가로 음반이 발매되었는데, 주제가 <그대와 나>보다 백제 망국의 역사를 연상케 하는 <낙화삼천>이 더 인기를 끌자 조선총독부에서 단속을 했다는 증언이 있다.

음반뿐만 아니라 조선악극단의 공연도 검열에 걸린 경우가 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1939년 일본 공연 당시에 일어난 이른바 ‘태극 문양’ 사건이다. 사건의 경위는 당시 일본 특별고등경찰에서 작성한 다음과 같은 문건을 통해 알 수 있다.

불온(不穩)무대장치 사용 조선악극단 공연 취체 상황
경성부 남대문통 1정목 104 소재 제국축음기주식회사 조선어판 오케레코드회사(통칭 조선악극단)는 3월 10일부터 5월 10일까지 오사카시 미나미쿠(南區) 히가시시미즈초(東淸水町) 소재 요시모토(吉本)흥행회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문예부 책임자 이철(李哲)을 지도통솔자로 악극부원 28명을 내지에 파견하여 도쿄, 나고야, 오사카, 교토 등 각지를 순업 중인데, 이들의 연극 중 무용 <승무(僧舞)>는 무대배경에 구(舊) 한국 국기를 모조한 도안을 가지고 장치를 하여 교묘하게도 조선인 관객의 이른바 민족의식의 기운을 엿볼 수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그리고 이번 달 21일부터 오사카시 소재 난카이(南海) 가게쓰(花月)극장에서도 위와 같은 장치로 연출하였는데, 이미 오사카부(府)에서는 관할하는 거주 조선인은 24만여를 헤아리고 관객도 상당수에 달하니, 앞의 구 한국 국기를 내건 연극을 관람한다면 더욱이 잠재적인 민족의식을 환기하는 분위기에 젖어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을 고려하여 현하 내선일체를 강조하는 시국에 이를 간과할 수 없다고 보고 앞의 연출 후 곧바로 경고를 내렸다.
해당 무대장치를 철거시키는 한편, 연출 책임자인 이철 당 35세, 김용호(金用浩) 당 32세, 김상진(金尙鎭) 당 34세를 불러들여 해당 무대장치를 하게 된 추이를 조사한 결과, 본 흥행에 요시모토 흥행측에서 “농후한 조선색채를 드러내는 방식을 희망한다”라는 것에 편승한 협의의 결과라고 한다.
이에 앞서 다이쇼(大正) 8년(1919년) 이들이 감상적인 소년시대에 이른바 조선독립만세 소요사건 당시 가두데모의 군집에서 종이와 헝겊에 구 한국 국기를 그리고 이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는 것을 목격하고 아프도록 감격한 일이 있음을 상기하고, 구 한국 국기를 내거는 것은 강력하게 조선색채를 표현하고 또 관객이 조선 민중이므로 잠재적인 민족의식의 분위기에 젖을 수 있으리라 여겨 해당 장치를 만든 사실이 판명되었다.
또한 앞의 연극을 관람한 관객이 극단에 보낸 별기(別記)한 문장처럼 “우리 조선동포의 위안은 수십여 편의 내지 연극을 관람하는 것보다 단 한 편이라도 이러한 연극을 관람하는 것이다”라고 많은 감격문을 보내온 것에서 나타내듯 이러한 종류의 연극이 조선인 민중에 끼치는 영향은 심각한 것임을 인정하게 되고 앞으로 취체상의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위와 같은 특별고등경찰의 보고 문건 뒤에는 당시 일본에 거주하고 있던 재일교포들이 조선악극단 공연을 보고 감격해서 보낸 편지의 일부도 실려 있다. 관객들의 이러한 뜨거운 반응이 있었기에, 일본 경찰 당국이나 조선총독부에서는 사소한 트집을 잡아 조선악극단 공연에 대한 검열을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니시나리쿠(西成區) 양(梁)
(전략) 우리 반도의 동포는 고국 삼천리를 버리고 현해탄을 건너와 수천 리 강산을 건너 타향 땅인 이 산업도시 오사카를 제2의 고향으로 하며 아무런 위안도 없이 밤낮으로 노동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내지 재류하는 동포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무엇보다 고국 삼천리 강산의 풍물이 아니면 안 됩니다. 수백 수천의 영화와 극보다도 동포 사람의 손으로 만든 삼천리 강산의 풍속과 사천년 역사의 예술입니다. 그것이 보잘것없더라도 우리 동포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보다 나은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열렬한 공연 모습을 보며 잊고 있었던 삼천리 강산의 풍물을 눈앞에 보고 사천년 역사를 떠올렸습니다. 아, 삼천리 강산의 앞날은 어디인지, 오늘 그저 조금 여러분의 열렬한 공연 모습을 보니 고국 삼천리에 아직 이러한 일이 건재하고, 장래에 보다 많은 박해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예술을 위하여 분투해 주시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미야케 시게오(三宅重夫)(조선인)
(전략) 이러한 공연이 좋든 나쁘든 타향 땅에 있으면서 본다고 하는 것은 감격에 겨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 자신의 과거는 마음에 담은 감상과 회고적인 것들이 앞을 가려, 또 절실하게 흥행적으로도 성공하기를 바라 마지않은 기분이 됩니다. 내지의 사람들에게 객관적으로 어떻게 비쳤을까 등등이 걱정이랄까, 왠지 마치 자기 자신의 일처럼 마음이 쓰여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부디 우리 삼천리 강산의 유구한 사천년 역사를 강호에 널리 전개해 줄 것을 빌어 마지않습니다.

김영수(金永銖)
(전략) 여러 선생님이 도쿄에 와서 목적을 달성하고 크게 우리 삼천리 동포의 유일한 악단으로서 명예를 드높이기를 빌어 마지않는 지금입니다. 우리들도 조선인인 이상 무엇보다 고향의 아름다운 여러분을 만난 일이 감격스러운 바입니다. 그 복장에서도 두루두루 잘 짜인 간단하면서도 아름다운 의상에 있어서는 우리 친구들 간에도 자주 뽐내곤 합니다. 특히 중간 막과 마지막에 함께 노래할 때 무대에 나온 흰 옷을 두른 여사는 정말 여신처럼 삼천리 전체의 광명과도 같이 여겨져 뭔가 잊고 있던 우리나라의 것이 되살아났습니다. 그것은 우리 조선인으로서 당연한 감격이라 할 수 있겠지요. 삼천리 강산을 위해 널리 분발해 주세요.

[ 금지 처분을 당한 음반들 ]
제목 종류 음반 번호 발매 연월 처분 일자 처분이유 처분내용
서울구경 난센스 1519 3302 330613 치안방해 금지
장한가(長恨歌) 유행소곡 1509 3302 330803 치안방해 금지
범벅타령 잡가 1511 3302 330915 풍속괴란(壞亂) 금지
벽창호 난센스 1743 3501 350823 치안방해 금지
해적 블러드 영화설명 1968 3703 370323 치안방해
오몽녀 영화극 1969 3703 370323 풍속괴란
하누님 맙쇼 만요 12123 3805 380420 풍속괴란 가두연주금지
타향의 술집 유행가 12156 3809 380811 치안방해 가두연주금지
누가 알겠소 유행가 12159 3809 380811 치안방해 가두연주금지
기로의 황혼 유행가 12175 3811 381007 치안방해 가두연주금지
편지와 전화 유행가 12248 3907 390510 풍속괴란
겁쟁이 촌처녀 만요 12248 3907 390510 풍속괴란
역마차 가요비극 20107 ~ 20109 4110 420200 ‘시국으로 보아 반갑지 못한
내용’
발금폐반 (發禁廢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