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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레코드와 조선악극단조선연예협회와 군국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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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연예협회와 군국가요

조선연예협회

조선연예협회는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날로 강화되어 간 전시체제와 관련해 조직된 단체이다. 특히 1940년에는 일본이 건국한 지 2600년이 되었다는 이른바 ‘기원(紀元) 2600년’ 기념행사가 대대적으로 벌어지면서 사회 전반을 ‘신체제’로 재구성하자는 캠페인이 다방면으로 전개되었는데, 이에 발맞추어 대중공연예술 전반을 아우르는 조직으로 조선연예협회가 결성되었다.

1941년 1월에 결성된 조선연예협회에는 이철(李哲), 최무성(崔茂盛), 이서구(李瑞求) 등 악극·음반·서커스 같은 다양한 대중공연예술 분야의 유력자들이 참여했고, 가장 큰 조직인 조선악극단과 조선연예주식회사를 이끌고 있었던 이철이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이철을 도와 조선연예주식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김상진(金尙鎭)도 조선연예협회 창립 당시 임원을 맡았다.

조선연예협회는 무대 공연을 통해 위문 활동을 하거나 공연 수익금으로 위문품 등을 마련해 전선으로 보내는 등의 사업을 진행했다. 1941년 5월에는 전선으로 보내는 위문품을 보냈고, 1941년 7월에는 ‘국민연예제전’이라는 제목으로 특별공연을 개최한 예가 확인된다. 같은 7월에는 산하단체로 작가동호회가 결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연예협회는 결성된 지 1년 반 만인 1942년 7월에 연극협회와 통합하여 조선연극문화협회로 재출발하면서 해산하고 말았다. 조선연예협회에서 회장을 맡았던 이철은 조선연극문화협회에서는 협회 직속 이동극단 단장으로 위상이 격하되었다. 그것이 어떤 알력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이철 자신이 그런 협회 일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이후 이철이 이른바 어용 문화단체의 전면에서 활동한 흔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오케(Okeh)레코드의 군국가요

조선을 식민지로 지배한 일본의 정책에 직·간접적으로 부응한 이른바 친일은 대중가요에서 주로 군국가요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1937년 7월 중일전쟁 발발 이후 전시체제가 강화되면서 각 음반회사에서는 1937년 말에서 1938년 초에 걸쳐 약간의 군국가요 음반을 발매했는데, 특기할 만한 사실은 이때 유독 오케레코드에서만 군국가요를 발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오케레코드의 운영권은 이미 일본에서 파견한 지점장이 행사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음반회사에서 모두 발매한 군국가요를 오케레코드에서만 내지 않은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어쩌면 소속 작가가 가수들이 군구가요 제작에 비협조적이었던 것이 이유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오케레코드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군국가요 발매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상업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조선 대중에게 환영을 받지 못하는 군국가요를 제작할 필요가 없는 것이 당연했지만, 조선총독부가 주도하는 전시체제가 날로 강화되는 상황에서는 정치 논리가 더 우세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확인되는 오케레코드 최초의 군국가요는 1941년에 발매된 <지원병의 어머니>이다. 이 노래는 일본 군국가요 <軍國の母>를 번안한 것인데, 해외 공연 당시 장세정(張世貞)이 이 노래를 불러 대단한 호평을 받은 것이 발매 계기가 된 듯하다.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이후에는 여느 음반회사들과 마찬가지로 오케레코드에서도 많은 군국가요를 제작해 발매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 발발 소식이 전해진 그날 아침, 이철은 조선연예주식회사 사원들을 극장 명치좌(明治座)에 모두 모이도록 한 뒤, 앞으로 어떤 불가피한 시련이 닥칠지 모르니 모두가 신중해야 할 것이라고 눈물로 당부했다 하는데, 어쩌면 군국가요 제작 같은 일이 불가피함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 수도 있다.

당시 오케레코드의 사세(社勢)는 최고 인기가수 백년설(白年雪)까지 스카우트할 정도로 활발했으므로, 오히려 다른 음반회사보다 더 많은 군국가요 작품이 오케레코드에서 나온 것도 사실이다. 현재까지 확인되는 오케레코드의 군국가요 목록을 제목 순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도표 참조>

[ 오케레코드의 군국가요 목록 ]
제목 곡종 연도 작사 작곡 노래 음반번호
강남의 나팔수 가요곡 4201 조명암 김해송 남인수 31085
결사대의 아내 가요곡 4301 조명암 박시춘 이화자 31145
고성의 달 가요곡 4205 조명암 박시춘 최병호 31104
그대와 나 가요곡 4201 조명암 김해송 남인수·장세정 31084
남쪽의 달밤 가요곡 4208 조명암 박시춘 남인수 31122
낭자 일기 가요곡 4209 조명암 박시춘 남인수 31127
단심옥심 가요곡 4301 조명암 이봉룡 장세정 31146
마지막 필적 신가요 4209 조명암 이봉룡 이화자 31126
망루의 밤 가요곡 4301 조명암 김해송 백년설 31145
모자 상봉 가요곡 4212 조명암 노시로 하치로 (能代八郞) 백년설 31139
벽오동 가요곡 4202 조명암 이봉룡 최병호 31091
병원선 가요곡 4204 조명암 박시춘 남인수 31097
부모 이별 가요곡 4308 조명암 김해송 백년설 31172
산 천리 물 천리 가요곡 4303 조명암 이봉룡 최병호 31165
신춘 엽서 가요곡 4201 조명암 김해송 이난영 31085
아가씨 위문 가요곡 4303 조명암 이봉룡 장세정 31158
아들의 혈서 가요곡 4203 조명암 박시춘 백년설 31093
아세아의 합창 가요곡 4211 조명암 박시춘 김정구 31137
애국반 가요곡 4202 조명암 김해송 김정구 31092
옥토끼 충성 가요곡 4303 조명암 이봉룡 백년설 31159
옥퉁소 우는 밤 신민요 4303 조명암 박시춘 이화자 31160
위문편지 신가요 4209 조명암 남방춘 백년설 31126
이 몸이 죽고 죽어 가요곡 4208 조명암 김해송 백년설 31121
이천오백만 감격 가요곡 4311 조명암 김해송 남인수·이난영 31193
조선해협 주제가 4308 조명암 박시춘 백년설 31192
즐거운 상처 가요곡 4205 조명암 박시춘 백년설 31102
지원병의 어머니 애국가 4108 조명암 고가 마사오 (古賀政男) 장세정 31052
지원병의 집 가요곡 4312 조명암 박시춘 장세정 T31211
진두의 남편 가요곡 4202 김다인 박시춘 박향림 31091
총후의 자장가 가요곡 4204 조명암 김해송 박향림 31097
혈서지원 가요곡 4311 조명암 박시춘 남인수·박향림·백년설 31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