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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레코드와 조선악극단음악영화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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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영화제작

‘조선 최초의 음악영화’로 일컬어진 <노래 조선>은 1936년 4월 15일에 조선극장에서 개봉했다. 모두 7권 분량인 <노래 조선>은 한국에서 첫 번째 발성영화가 만들어진 1935년 이듬해에 나온 음악영화라는 점에서 영화사적으로도 의미가 큰 작품이다.

제작에 참여한 스태프를 보면, 김상진(金尙鎭)이 감독·각본, 이명우(李明雨)가 촬영·편집, 김능인(金陵人)이 구성, 최호영(崔虎永)이 음악지휘를 맡았다. 김능인과 최호영은 각각 오케(Okeh)레코드 문예부와 음악부에서 활동하던 인물이고, 김상진 또한 <노래 조선> 이후 오케레코드·조선악극단에서 활약했으므로, <노래 조선>은 사실상 오케레코드에서 주도해 만든 영화라 할 수 있다.

현재 필름이 남아 있지 않으므로 영화의 내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오케연주단의 일본 공연(1936년 2월 8일~3월 4일) 실황과 오케레코드 전속 예술가들이 따로 촬영한 <춘향전>을 편집해 만들었다고 전한다. <노래 조선> 출연자인 고복수(高福壽), 김해송(金海松), 임생원(林生員), 임방울(林芳蔚), 이난영(李蘭影), 김연월(金蓮月), 강남향(江南香), 나품심(羅品心), 한정옥(韓晶玉) 등은 모두 오케레코드 전속으로 많은 음반을 녹음한 이들이다.

<노래 조선> 제작은 출판에서 시작해 음반, 무대로 사업 영역을 넓혀 온 이철(李哲)이 영화에까지 진출한 첫 걸음이라 할 수 있다. 관객 숫자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노래 조선>의 흥행 성적이 그리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후로도 영화를 향한 이철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1939년에 개봉한 일본 영화 <思ひつき夫人>에 조선악극단이 출연한 것이나, 비록 불발로 끝난 것 같기는 하지만 1941년에 <노래의 낙원으로 간다>라는 영화를 조선악극단에서 제작하려고 했던 것은 그러한 열정을 보여 주는 좋은 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