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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레코드와 조선악극단교육레코드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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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레코드 발매

오케(Okeh)레코드에서 1936년 1월 특별신보(新譜)로 발매한 조선어교육레코드는 일제시대 음반사(史)에서 극히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당시 ‘국어’로 불리며 제1언어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일본어였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상황에서 일본어가 조선어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불가피한 상황이었고, 그러한 가운데 조선어의 입지는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민족어로서 조선어를 지키기 위해 조선어학회 등이 노력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 바인데, 오케레코드 또한 당시 음반회사 가운데 최초이자 유일하게 조선어교육레코드를 제작·발매함으로써 민족어 수호에 한 몫을 했다.

조선어교육레코드는 1935년에 전반에 기획되어 여름방학 기간을 이용해 녹음했다. 당시 오케레코드는 서울에 녹음 스튜디오를 아직 가지고 있지 않았으므로, 녹음할 사람들이 본사 역할을 하고 있던 일본 데이치쿠(帝蓄)레코드로 직접 가는 방식을 통상적으로 취했다. 하지만, 조선어교육레코드는 보통학교 학생들이 대거 녹음에 참여했으므로, 많은 어린이들을 일본까지 데리고 갈 수 없어 녹음 설비를 서울로 가지고 오는 방법을 택해 녹음을 진행했다. 녹음 설비와 기술자를 서울로 불러들여 가설 스튜디오를 설치하는 데에 막대한 비용이 들었음은 물론이다.

오케레코드 문예부장 김능인(金陵人)이 주도한 조선어교육레코드 제작은 조선어학회, 조선음성학회, 조선음악교육협회, 조선음악가협회 등 유관기관의 적극적인 추천을 받았고, 조선총독부에서도 정식으로 인가를 얻어냈다. 녹음 교본으로 사용한 것이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보통학교 조선어독본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대외교섭에 능숙했던 오케레코드 운영자 이철(李哲)의 역량이 상당히 발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녹음에 직접 참여한 학생들은 경성사범학교 부속 보통학교, 경성여자사범학교 부속 보통학교에서 선발되었고, 예비교사라 할 수 있는 경성여자사범학교 학생들도 참여했다. 올바른 문법을 책임지는 독법(讀法) 지도는 경성여자사범학교 선생이었던 심의린(沈宜麟)이 맡았고, 녹음 내용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 음악은 중앙불교전문학교 강사이면서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 촉탁(囑託)도 맡고 있었던 조선음악교육협회의 이종태(李鍾泰)가 맡았다. 올바른 발음을 책임지는 음성 지도는 연희(延禧)전문학교 교사인 조선음성학회의 정인섭(鄭寅燮)이 맡았다. 이철과 김능인이 모두 연희전문학교 출신이었던 점을 생각해 보면, 정인섭의 참여에는 연희전문학교 학연이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수천 원의 비용이 들어간 조선어교육레코드는 1935년 10월 한글날에 유관기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열린 시청회를 통해 첫 선을 보였다. 이어 11월 이후 여러 신문과 잡지를 통해 대중에게도 홍보되었고, 12월부터는 실제 판매가 이루어졌다.

모두 열두 장으로 발매된 조선어교육레코드는 보통학교 학생의 교육을 위해 제작되었으므로,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각 학년에 두 장씩 배정되어 구성되었다. 각 학년별 주제는 다음과 같다.

1학년: 바른 독법과 틀린 독법, 반절, 해·아버지와 아들, 코끼리·비
2학년: 봄, 무지개·물방아, 산울림, 한석봉
3학년: 박혁거세, 꿈·달아 달아, 자장가, 꽃잎·점심밥
4학년: 혹 뗀 이야기, 아침 바다, 부여
5학년: 어부가, 언문의 제정, 심청
6학년: 시조 5수, 공자와 맹자, 시화(詩話) 2편, 도상(途上)의 일가(一家)

조선어교육레코드는 발매된 지 68년 만인 2004년에 CD로도 복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