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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레코드와 조선악극단오케음악무용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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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음악무용연구소

오케(Okeh)음악무용연구소

오케음악무용연구소는 조선연예주식회사를 설립해 조선악극단을 이끌면서 조선의 공연산업을 석권한 이철(李哲)이 지속적인 대중예술 인재 발굴과 양성을 위해 설립한 조직이다. 사상 최초의 대중예술 전문 교육기관이라고도 할 수 있다.

1940년 9월에 설립된 오케음악무용연구소의 소장은 이철이 직접 맡았고, 그 아래 각 분야의 교수 13명이 포진해 엄격하게 선발된 생도들을 교육했다. 음악의 김형래(金炯來), 무용의 김민자(金敏子), 조영숙(趙英淑), 이준희(李俊嬉) 등이 대표적인 교수진으로 알려져 있다.

1941년 2월에는 반년 정도 연습한 제1기 생도들의 첫 발표회가 열리기도 했는데, 제1기생 가운데 단연 두각을 나타낸 이가 광복 이후 악극의 프리마돈나로 일세를 풍미한 김백희(金白姬)이다. 1941년 4월에는 제2기생을 모집하는 광고가 나왔고, 이후 해마다 한 차례 한 기수씩을 선발했다.

생도는 3년 동안 교육을 받게 되는데, 당초 별도의 급여를 지급하지는 않았지만 교육비가 면제되었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눈길을 끈 제복을 지급받았다. 어느 정도 교육을 받아 숙련이 되면 조선악극단 무대에 백댄서나 코러스로 출연을 하게 됐고, 기량이 뛰어난 사람은 3년차 정도에 솔로 무대에 설 기회를 갖기도 했다. 중도에 탈락하지 않고 3년차 생도가 되면 상당한 액수의 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광복 이후 악극, 대중가요 분야에서 크게 활약한 백설희(白雪姬)는 1942년 3기생으로 선발되어 1944년 졸업 직전에 첫 솔로 무대에 선 경우이다. 오케음악무용연구소는 김백희·백설희 외에도 강윤복(康允福)·심연옥(沈蓮玉)·주리(朱莉) 등 많은 음악, 무용계의 인재를 배출해 1950년대까지도 이철의 유산이 계승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아오이(アオイ)악극단

아오이악극단은 1941년 5월에 결성된 공연단체이다. 조선악극단과 마찬가지로 조선연예주식회사에서 운영을 했고, 오케(Okeh)음악무용연구소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악극단 멤버들이 모두 여자 신인으로만 구성되어 있었고, 조선연예주식회사에서 그런 인력 동원이 가능한 곳은 당연히 오케음악무용연구소였기 때문이다.

‘아오이’라는 이름은 일본어이고 의미는 ‘푸름(靑)’이다. 조선악극단 단장 이철(李哲)이 일본식 성으로 사용한 ‘아오야마(靑山)’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1944년 6월에 이철이 사망한 이후 오케음악무용연구소가 청산(靑山)음악무용연구소로 이름을 바꾼 것 역시 이철의 이름을 딴 예라 할 수 있다.

아오이악극단은 창립 이후 첫 번째 피로(披露) 공연으로 1941년 5월 말 호남선 일대 도시들을 순회했다. 그러나 그 뒤로 아무런 관련 자료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흥행에 성공하지 못해 해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연예주식회사 입장에서는 일종의 파일럿(pilot) 프로그램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