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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레코드와 조선악극단사토 쿠니오(佐藤邦夫). 1915~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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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쿠니오(佐藤邦夫). 1915~1996

연예기획자. 1915년 일본 도쿄(東京)에서 태어났다. 장사를 하는 집안에서 태어났으므로 가업을 잇도록 종용받았으나, 각종 공연예술에 심취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이후 직접 써서 다카라즈카(寶塚)소녀가극단에 제출한 공연 대본이 채택되어 본격적으로 연예기획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37년부터는 영화와 관련된 일에도 관여하게 되었고, 1940년부터는 다카라즈카소녀가극단 관련 일을 정리하고 영화 프로듀서에 전념했다. 1941년에 쇼치쿠(松竹)영화사의 일을 맡게 되어 경성을 방문했고, 쇼치쿠영화사가 운영하던 극장 명치좌(明治座)에서 이철(李哲)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당시 이철이 이끄는 조선악극단은 명치좌에 진출해 공연을 하고 있었다. 조선악극단의 명치좌 공연에 도움을 준 사토 쿠니오는 그로 인해 이철의 호감을 사게 되었고, 일시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경성을 방문한 1943년에는 조선악극단 총무직을 이철로부터 제의받게 되었다. 이철 입장에서는 일본인을 총무로 기용함으로써 조선악극단의 공연, 특히 만주나 중국 공연을 원활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었는데, 이미 조선악극단의 수준 높은 공연에 매료된 바 있는 사토 쿠니오는 바로 이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1년 가까이 조선악극단의 총무로서 활동한 사토 쿠니오는 태평양전쟁이 격화되면서 징병 소집을 당하게 되었고, 결국 1943년 12월에 조선악극단을 떠나게 되었다.

당시 이철을 도와 오케레코드·조선악극단에서 일한 여러 일본인들 중에서도 사토 쿠니오는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보인 인물이었다. 1945년 이후로도 영화 프로듀서로 활동한 사토 쿠니오는 영화 또는 대중음악을 통한 한일 문화교류 확대에 많은 공헌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