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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레코드와 조선악극단고운봉(高雲峰). 1920~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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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봉(高雲峰). 1920~2001

가수. 1920년 2월 29일에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났고, 본명은 고명득(高明得)이다. 별다른 음악 교육을 받지는 못했으나 1939년에 직접 태평(太平)레코드를 찾아가 테스트를 받고 가수로 발탁되었다. 발탁 직후 우선 전국 순회공연에 참가했고, 1939년 8월 신보 <아들의 하소>, <국경의 부두>로 정식 데뷔를 했다. 이후 1940년 여름까지 태평레코드 전속가수로 활동하면서 <남강의 추억> 같은 인기곡을 발표했다.

오케레코드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전속을 옮긴 뒤로는 <홍등일기>(1940년), <선창>(1941년) 등을 발표해 인기를 얻었다. 1942년 전반까지 조선악극단 무대에서도 활약했으나 이후 콜럼비아(Columbia)레코드로 자리를 옮겨 1943년까지 작품을 발표했다. 이후 다시 조선악극단으로 복귀해 광복 직후까지 활동했다.

정확한 경위는 알 수 없으나 6·25전쟁 발발 전에 일본으로 건너가 십 년 정도 거주했다. 일본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도 가수 활동을 하는 동시에 재일교포 학교인 백두(白頭)학원에서 음악교사로 재직하기도 했다. 당시 이철(李哲)의 매부인 김성흠(金星欽)이 일본으로 건너와 해후하기도 했다.

1958년에 귀국한 뒤로 가수 활동을 재개해 <명동 블루스> 등의 인기곡을 발표했다. 1960년대 들어 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 위원장, 연예협회 부이사장 등을 역임했고, 1998년에 문화훈장을 받았다. 2001년 8월 1일에 노환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