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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레코드와 조선악극단김능인(金陵人). 1911~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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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능인(金陵人). 1911~1937

작사가·시인. 황해도 금천(金川)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승응순(昇應順)이다. 필명이 금릉인(고향 금천의 다른 이름이 금릉(金陵)이다)이라 불리기도 한다. 남풍월(南風月)이란 필명을 썼다는 설도 있으나 확실한 증거는 없으며, 사후에 발표된 음반에는 추엽생(秋葉生)이란 필명으로 표기되기도 했다. 보성고등보통학교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했고, 1920년대 말부터 문맹퇴치와 아동문학 운동에 참여했으며,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시문을 발표했다.

1932년에 오케(Okeh)레코드가 설립될 때부터 문예부장을 맡았던 것으로 보이며, 1933년 제1회 신보부터 많은 가사를 써서 발표했다. 문예부장을 맡았던 데에는 이철과 같은 연희전문학교 출신이라는 점이 배경으로 작용한 듯하다. 많은 가사를 발표하는 동시에 직접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민요 채집 활동을 하기도 했고, 조선어교육레코드 발매 작업을 총지휘하기도 했다. 1936년에 오케레코드 문예부장에서 물러나 요양을 하다 이듬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작사가로 활동한 기간이 4년 정도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1930년대 전반을 대표하는 작사가로 뛰어난 작품을 많이 남겼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무명초>(포리돌(Polydor)레코드에서 발표), <귀향>, <청춘행진곡>, <조선찬가>, <고적>, <불사조>(이상 1933년), <사랑의 고개>, <바다의 로맨스>, <이원애곡>, <타향>, <오대강타령>, <휘파람>(이상 1934년), <등대불과 개나리>, <사막의 한>, <환영>, <이어도>, <관서천리>, <지는 석양>, <앞강물 흘러 흘러>, <신계곡산>(이상 1935년), <울며 새우네>, <청춘은 물결인가>, <남포로 가는 배>(이상 1936년), <사나이 마음>, <산유화>(이상 1937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