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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의 역사

1986년 브랜드 메이져 社의 <아리랑 선호도 조사>에 우리 민요 중 대표적인 민요는 어떤 것인가라는 답변에서 아리랑이 97%로 나타났다. 이는 두말할 나위 없이 아리랑이 ‘민족을 대표하는 노래’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한민족이라면 누구도 이 결과를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아리랑은 처음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한 산악지대에서 출발하여 산길과 강줄기를 따라 메나리조의 노래로 형성, 확산되어 오는 과정에서 각 시대마다 기능과 성격을 달리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장르, 담당 층, 기능, 연희공간, 유통방식 등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정체성를 유지하고, 독자적인 지위를 갖고 왔다. 따라서 다른 민요와 동일한 차원에서 분석하기에는 적절치 않다. 왜냐하면 다른 민요들은 변화 과정에서 곡조와 사설 그리고 성격의 변화가 있을 뿐이지만, 아리랑은 이를 포함함은 물론 당대 시기에 따라 성격의 변화를 갖고 그 변화 시점에서 변이형을 발생시키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갈래론으로 분류하거나, 성격을 규정해서는 아리랑에 관한 바른 평가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은 자명하다.

아리랑의 역사는 어떤 민요와 비교해도 이색적이며, 이러한 특징이 아리랑의 기원을 이해하는데 더욱 어렵게 만드는 국면이 된다. 백두대간의 태백산 일대를 중심으로 한 메나리토리 선법으로 ‘뫼아리’(산+소리)또는 ‘아라(어러, 우러, 우려, 아레)리’란 이름으로 불려지게 되면서, 남한강계(긴아라리, 정선아라리)와 북한강계(잦은아라리, 강릉아라리)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경복궁 중수기에는 북한강계 ‘강릉아라리’가 춘천의 ‘강원도아리랑’을 낳고, 이것이 경기도 일대에서 ‘잦은아리랑’(‘아르렁’-헐버트記)을 낳았다. 이 ‘잦은아리랑’은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주제가 아리랑등을 형성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중 주제가아리랑은 1926년에 개봉되어 크게 히트한 영화아리랑의 주제가로써 그 영향으로 신민요· 유행가· 대중가요 아리랑으로 까지 다양하게 확대하는 시키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남한강계로는 정선아라리가 충북 ‘중원아라성’을 낳고, 이것이 서울, 경기지역에서 ‘긴아리랑’을 형성시키는데 기여했다. 이로써 아리랑은 우리 노래 문화의 전 역사를 횡단해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