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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민족사의 증언

해설-아리랑-민족사의 증언

만일 아리랑이 없다면 과연 남과 북 그리고 126개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해외동포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어떤 노래로 우리가 하나임을 확인할 수가 있을까?


그렇다. 이미 부모의 이름조차 한국어로 말하지 못 하는 2, 3세로 접어든 교포사회에서도 다행스럽게도 아리랑만큼은 부르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주목되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아리랑은 단순한 민요가 아니라 그 이상의 노래 즉 ‘한민족가(韓民族歌)’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민중적이며 저항적인 노래이면서 반드시 ‘민족’의 이름으로 불려진다는 점에서는 또한 민중의 노래인 것이다. 더불어 한민족이 있는 곳은 어디에든 아리랑은 전승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아리랑의 강한 생명력과 가장 넓은 전승범위인 ‘아리랑권역’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바로 아리랑의 민족사적 위상을 말해주는 것으로서 수많은 여타 민요가 지니지 못한 아리랑만의 특징이며 가치인 것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아리랑을 말할 때에는 민요론적인 접근이나 민속학적인 접근에 앞서 ‘민족사’라는 프리즘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 진의를 옳게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기능수행 현장이 사라진 이 시대의 민요는 생명력이 없다.” 라거나 “전파매체 시대의 구전민요는 단지 박물학적 가치밖에는 없다.” 는 민요 일반론에 의해 박제시키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리랑의 민족사적 위상 또는 민족사적 가치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예로써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989년 3월 9일 상오 10시. 판문점 우리 측 지역「평화의집」에서 제1차 단일팀결성 합의에 따른 체육회담이 있었다. 이 회담은 단일팀의 호칭· 단기· 단가를 결정하기 위한 첫 회담이었다. 여기서 남측과 북측은 각각의 안을 제시했다. 호칭에 있어서 남측은 ‘KOREA’ 북측은 ‘KORYO’, 기에 있어서 남측은 한반도의 바탕색을 녹색으로 북측은 황색으로 만든 기로, 그 마지막 단가로 남측은 ‘아리랑’을 북측은 ‘1920년대 아리랑’을 제시했다.(당시 북측은 ‘1920년대’라는 단서를 단것은 아리랑의 항일정신을 강조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결국 마지막의 단가에서만은 ‘아리랑’이 동일 안으로 제기된 것이다. 이로서 남북단일팀 단가 아리랑은 남북회담사상 유일한 ‘동일 안 제출 → 합의’라는 최초의 선례를 남기며 통과됐다. 남북회담사상 쾌거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결국 북측의 악보제공(89년 3월 20일)에 남측의 제작(91년 4월21일)이라는 합의 원작에 따라 금난새 지휘로 연주, 제작되어 일본 국제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북측제공 1920년대의 아리랑 편곡악보 북측제공 1920년대의 아리랑 편곡악보

첫째는 한민족이면 누구나 알고 부른다는 높은 인지도 때문이고, 둘째는 한국을 아는 이라면 ‘SONG OF KOREA’로 알고 있는 국제성을 감안한 것이고, 셋째는 전 세계 해외동포까지도 알고 부를 수 있는 범민족성을 감안했고, 넷째는 단가라는 준 국가적 위상을 민족통일 후에 국가로 활용할 수 있는 경제성을 감안한 것이고, 다섯째는 아리랑을 부를 때는 그 자리에 있는 한민족이면 누구나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나의 방향성을 지닌 힘을 발휘한다는 ‘연대감과 대동정신’을 인식한 것이고, 여섯째로는 민족사의 수난기 때마다 ’시대의 노래‘로 전면에 나서서 고난에 대응하고 불의에 항거하여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그래서 종국에는 하나가 되는 해원상생 정신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생각 할 수 있는 이유는 아리랑의 민중성을 꼽은 것인데, 예를 들면 한문기록으로는 단 한 줄도 남겨지지 않은 6천여수의 노랫말을 순전히 민중들의 입과 귀, 가슴으로 전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상에서 살핀 몇 가지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아리랑의 위상이나 가치. 더불어 미래의 위상까지 확인할 수가 있다. 이것이 바로 민족사라는 프리즘을 통해 본 아리랑만의 모습인 것이다. 그런데도 일제시대의 일본인 기록이나 우리 스스로의 일부기록은 물론이나 해방 직후의 고정옥과 같은 민요학자, 특히 양주동, 이병도와 같은 대표적인 국학자들까지도 아리랑을 옛 민요의 하나로 어원풀이의 대상쯤으로 취급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글 속에는 당연히 동학현장에서 농투산이들이 앙다문 입으로 아리랑을 부르며 외세와 탐관오리에 저항했던 사실이나, 3.1운동 현장에서 시위군중이 아리랑으로 대열의 구심력을 유지했다는 사실이나, 광복군들이 국내 진격작전을 고대하며 군가로 ‘광복군아리랑’을 불렀다는 사실이나, 해방직후의 혼란기에 좌우합작 행사에서 ‘애국가’대신 아리랑을 불렀다는 사실들을 찾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는 바로 아리랑이 철저한 민중언어로 기록한 민족사의 증언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과연 이런 사실들에서 확인되는 아리랑의 민족사적 가치가 국문학적 입장에서나 민요론적 입장에서 본 가치보다 하위에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민요론적인 입장에서만 본다면 다른 민요가 더 가치가 있을 수 도 있다. 많은 민요론자들이 지금까지 아리랑을 단순히 유행 유희요의 하나로 취급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아리랑의 민족사적 거치를 강조함에 있어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민족사적 가치에는 바로 아리랑의 ‘시대적 필요성’까지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시대적 필요성’이란 남과 북은 물론 해외동포 모두가 아울러 동일문화권에서 공존하자는 이른바 ‘한민족공동체’ 실현에 아리랑이 그 동질성의 인자로서 연대감과 대동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아리랑의 가치를 강조하고, 이 시대에도 아리랑을 말하고 노래하게 되는 까닭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외국에서의 남북 모임이나 올림픽과 같은 국제경기에서 주체 할 수 없는 감격스런 순간을 맞을 때, 이를 아리랑으로 표현하는 순간들에서 아리랑의 연대감과 대동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리랑의 힘은 우리들의 필요에 의해서라면 언제든 이 시대에도 발휘될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