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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아리랑

해설-일본의 아리랑

“아리랑은 고난의 꽃이다.”한 시인의 이 지론에 따른다면 백여년 전으로부터, 시작된 한민족의 해외 유이민들이 피워낸 아리랑은 그야말로 꽃 중에 꽃이 아닐 수 없다. 조국으로부터 내몰려 살길을 찾아 떠난 것이었고 탄압을 피해 망명을 했던 이들의 아리랑이기 때문이다.


이들 교포사회의 아리랑은 국내 아리랑보다 더 아픈 사연을 지닌 것들이다. 그들은 고국을 원망하며 단봇짐 하나에 아리랑 한 수를 가슴에 담고 떠나 척박하고 텃세 심한 이국땅에서 살아 왔으니 고난의 땅으로 말한다면야 이곳 보다 더한 곳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이중에서도 더욱 아픈 곳은 인접국으로서 역사 관계를 맺어온 일본으로서 극심한 차별대우까지 받으며 살았으니 어느 지역보다도 아픈 아리랑들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에 건너간 아리랑은 한일 관계를 상징하듯 매우 복잡다단한 층위를 이루고 있다. 다음의 세 가지 경로에 의해서 인데, 첫째는 1876년 이후 한국을 방문한 노부오 준뻬이라는 <인천이사청> 관리 같은 이들의 글을 통해서 이고, 둘은 1936년 조선방송협회(JODK)에서 일본 NHK를 통해 일본에 중계한 <아리랑集> 같은 방송을 통해서 이고, 셋은 소화(昭和)시대 최고의 작곡가 고가 마사오(古賀政男:Koga Masao) 1) 가 편곡한 <아리랑唄> 같은 음반을 통해서 형성된 것이다. 모두가 일본 측의 일방적인 취사(取捨)에 의해서지만, 그래서 일본 문헌에는 깊은 정보는 아니지만 왠만한 소화시대 조선 관련 인사의 기록에는 거의 빠짐없이 아리랑을 언급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1950년대 발매된 고가마사오의 SP음반 1950년대 발매된 고가마사오의 SP음반

특히 1930년을 기점으로 일본의 많은 가수들이 아리랑을 취입 했고, 한일 양국의 대표적인 가수들이 아리랑을 불렀고, 이 중에는 아리랑이 마치 자기들의 노래인 듯 마음대로 변형시켜 생산해 낸 가요도 있다. 당연히 곡조도, 사설도 자기들 식인 것은 물론이고, 의미도 우리와는 다른 것이다. 아리랑야곡·아리랑을 넘어서·아리랑비가·아리랑애가·아리랑부르스 2) 등, 곡목만으로도 느낄 수 있듯이 마치 자기들의 노래이듯, 또는 비아냥거리는 듯한 곡목을 달았다.
그런데 더욱 아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고가 마사오가 아리랑을 편곡, 일본 내에서 유행시킨 연유로 해서 그의 제자를 비롯한 일부 가수들은 아리랑을 고가 마사오의 작곡으로 알고 있다라든가, 1930년대 소년 죄수들의 노래인 ‘스- 쫭 가락'이 아리랑에 원류를 두고 있다는 주장 등이 그것들이다. 또한 가미가제 특공대원이 아리랑을 통해 자신이 조선인임을 밝히고 산화한 아픈 사연을 희화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그렇다.
이제 이를 일본 속의 아리랑 상황을 구체적으로 짚어 보기로 한다.

1) 고가 마사오(1904~1978)는 일본 소화(昭和)시대 가요계 최대의 작곡가로 전체 46퍼센트를 작·편곡하여 ‘고가 멜로디'라는 용어를 탄생시킬 만큼 일세를 풍미한 인물이다.

2) 西條八十(소화 시대 대표적인 작사가로 1892에 나서 1970년 까지 살았다. 고가 마사오의 곡도 많이 작사 했다. 아리랑 후렴을 쓰는 <아리랑>을 작사 하기도 했다.) 작시, 服部良一 작곡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