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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의 아리랑

해설-강원도의 아리랑

아리랑1)은 아주 오랜 옛적, 조상들이 처음 이 땅에 터를 잡고 살던 시절, 산(山)에 대한 외경심(畏敬心)으로 바쳐진 산신가(山神歌 )였다. 또한 그 때는 '뫼(山)의 소리'라는 뜻의 '뫼아리'였다.
세월이 지나면서 '뫼아리'는 산간인의 노래로 되어 '아라리', '아라레이', '어러리'라는 이름으로 정착되었고 '메나리조'(토리)라를 기층, 음악성을 갖고 있다. 이 '아라리'는 다시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산길과 물길을 따라 봇짐꾼과 뗏군들에 의해 또한 동학군과 의병들에 의해 퍼져나갔고, 이로 인해 곳곳에서 새로운 아리랑들이 탄생되었다. 그것이 '중원아라성'2)이며 '아로롱'이며 '아라렁'이다.
그럼으로 '아라리'는 이 땅의 아리랑 역사에서 맨 처음의 모습이며, 모든 아리랑의 조종(祖宗)3)이고, '아라성'과 '아로롱'과 '아라렁'은 그 갈래의 모습들이다.
1) "아리랑"의 범주는 협의와 광의로 말할 수 있다. 협의로는 소리·노래 아리랑만을 말하는 것이고, 여기 서 다시 토속 ·통속 ·신민요·가요·해외교민 창작 ·외국인 창작아리랑 등으로 나누어진다. 광의로는 협의를 포함함은 물론, 영화·문학·각종 무대 예술작품 등, 심지어는 상품명이나 상호까지도 포함한 이 자료집에서는 광의의 개념으로 쓰였으며 그 중심은 협의의 아리랑만을 대상으로 하였다.
2) 남한강 하류 자역인 중원·음성 등지에서 불려지는 명칭이다.
3) 아리랑의 시원에 대하여 진도의 연구자들은 이와 다르게 주장하고 있다. 즉〈아리랑연합회〉진도 지회장이며 전 진도 문화원장인 박병훈 회장의 주장인데, 이에 의하면 진도지역에서 “아리랑타령”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경복궁 중수공사 때 유행한 “아리랑 타령”은 바로 이미 진도에 있던 것이 올라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유일하게 “아리랑타령”으로 부르는 곳은 진도 밖에는 없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原基層性’Ⅱ라고 말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