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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오백년

가사-한오백년

후렴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구
한오백년 사자는데 웬 성환가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임아
정을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

꽃 답던 내 청춘 절로 늙어가
남은 반생을 어느 곳에다 뜻 붙일꼬

백사장 세모래 밭에 칠성단을 모으고
임 생겨 달라고 비나이다

기구한 운명의 장난이런가
왜 이다지도 앞날이 암담한가

고목에 육화분은 송이송이 피어도
꺾으면 떨어지는 향기 없는 꽃일세

청춘에 짓밟힌 애끓는 사랑
눈물을 흘리며 어디로 가나

여름밤 등불 아래 모여드는 불나비
화패를 자초함이 어리석구나

한 많은 이 세상 냉정한 세상
동정심 없어서 나는 못살겠네

공연한 사랑을 마음에 두고
주고도 못 잊어 한이로다

내리는 눈이 산천을 뒤덮듯
정든님 사랑으로 이 몸을 덮으소

으스름 달밤에 기러기 소리
가뜩이나 아픈 마음 더욱 설레네

해설-한오백년

아리랑의 범주는 "아리랑"이란 명칭을 쓰거나 후렴에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를 쓰거나, 또는 알려진 어떤 아리랑의 곡조를 쓸 경우를 말한다. 그런데 이 '한오백년'은 노랫말과 후렴은 다르나 곡조가 '정선아라리'와 같으므로 아리랑의 범주에 넣는 것이다. 또한 이 같은 견해는 선율 분석에 의한 이보형의 아리랑종류 구분에서도 인정하는 바이다.(논문〈아리랑소리의 근원과 그 변천에 관한 음악적 연구〉·「한국민요학」제5집·1997)
한편 배경 설화도 ‘정선아라리'와 같다. 즉 조선 초 이성계의 혁명에 반대하여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정신으로 불사이군 개성 두문으로 숨어들었다 모진 회유와 박해를 피하여 정선 서운산으로 은거해 온 7현들이 고려의 멸망을 한탄하며 "5백년도 다 못 채우고 망하게 왠 성화를 그리 했느냐"라고 이성계를 원망한 것이 바로‘정선아라리'의 노랫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제시대 초기까지도‘정선아라리'로 불렸던 것이다. 그런데 일제시대 일본 음반 제작자들이 축음기판을 내면서 판매 전략상 곡명을 달리한 것이 내내 오늘에 이르른 것이다.

정선칠현비 정선칠현비
악보-한오백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