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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신앙편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는 서기 512년 신라 22대 지증왕 13년 6월에 하슬라주(현재의 강릉)의 군주였던 이사부가 우산국의 항복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 우산국이 울릉도와 독도를 중심으로 한 해상왕국이었다는 학자들의 해석을 토대로 하면, 독도는 울릉도와의 밀접한 상호관련성이 있음이 역사적으로 증명된다.
그리고 울릉도는 역사적으로 원주민(고대 해상왕국 우산국 등)이 살고 있는 주요 섬이며, 독도는 원주민 주요어업 활동공간이고 수산경제활동영역이며주요 삶터였다. 예로부터 독도는 울릉 주민(우산국 원주민 포함)의 일상생활의 영역이고 주요 생활공간임을 말한다. 그러므로 역사적, 문화적, 물리환경적(생활공간) 측면에서 독도와 울릉도는 매우 밀접한 유기적인 관련성을 띈다.
따라서 독도·울릉도 관련 각종 설화와 전설들은 두 섬 간의 생활환경(생활공간)의 유기적 상호관련성으로 인하여 상호간의 분리 혹은 양분될수 없으며, 독도·울릉도 권역(독도, 울릉도 및 인근 해양 포함)에 대한 통합적 개념으로 이해함이 타탕하다.


자료출처
여영택, 울릉도의 전설·민요, 정음사, 1984
울릉군, 울릉군지, 1989
경상북도청 관광진흥과 경북나드리 (http://www.gbtour.net)
포항KBS 울릉 (http://www.gbtour.net)

태하의 신

강원도원님이 울릉도를 관찰하러 왔다가 본토로 돌아가려했으나, 풍랑이 거세져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다. 그러다 한 노인이 나타나 동남 동녀를 남겨두면 풍랑이 그칠것이라 하였는데…

근세 조선 시대에는 울릉도가 강원도의 관할로 되어 있었으며, 울릉도에는 사람이 살지 못하도록 하여, 말하는 바 공도 정책을 써 왔다. 그리하여 강원도에서는 3년에 한 번씩 관리들이 이 섬에 와서 사람이 살고 있는지 없는지를 조사하여서 사람이 살면 잡아 갔다고 한다.
하루는 강원도의 원님이 큰 배에 부하들을 태우고 이 울릉도에 왔다. 양식도 많이 싣고 와서 이 섬을 샅샅이 뒤지었다.
사람이 사는 것을 발견 못하고 본토로 돌아가려고 태하에 머무르게 되었다. 연일 바람이 불고 파도가 거세어서 원님 일행은 도저히 배를 띄울 수가 없었다. 양식이 달랑달랑하였다. 원님은 큰 걱정이 되었다.
“이 일을 어떻게 한담!”
“이제 굶어서 죽게 되었습니다, 사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데.”
“이 절해고도에서 하늘이 우리를 미워하는 모양입니다.”
“요망한 소리!”
“오늘이 벌써 한 달째 부는 바람입니다.”
“설마 도리가 있겠지.”
원님은 대표자로서 태연스러운 태도를 보이기는 하였으나 속으로 큰 걱정이었다. 첫째 먹어야 살 것이고 마음이 불안하고 양식이 모자라는 줄 알면 부하들이 힘으로 달라들 터임이 분명하였다.
“아니, 못 가면 여기 살도록 하지.”
“여기는 도적떼가 자주 들르는 곳입니다.”
“우리에게도 장사들이 있지 않느냐?”
“하기는 그러하옵니다마는.”
“걱정을 하면 무엇하나.”
원님은 며칠 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그러다가 보니 하도 잠이 와서 낮에 깜박 졸다가 꿈을 꾸었다.
수염이 허연 노인이 나타나더니,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이 본토에 무사히 가려거든 동남 동녀를 여기 두고 가거라.”
사또가 놀라서 일어나니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상한 현몽이구나 싶었다. 그러나, 너무 걱정하던 터이나 그런 꿈을 꾸었으리라고만 생각했다. 또 하루가 지나고 밤이 되어 잠시 눈을 붙였다. 역시 어제 나타난 그 노인이 나타나서,
“동남 동녀를 여기 두고 가야 하느니라.”
하고는 간 데 온 데가 없었다. 사또는 범상한 일이로다, 이틀째 같은 꿈이 꾸어지다니 싶었으나, 남에게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파도는 여전히 고요하지 않았다. 배가 갈 수도 있을 수도 없을 만큼 파도는 높았다. 사흘째 밤에도 똑같은 꿈을 꾸었다.
“하는 수 없다.”
사또는 이를 깨물었다.
“하는 수 없다.”
혼자 중얼거렸다.
“모두 갈 채비를 하여라. 서둘러라. 내일은 배를 타고 가야 한다.”
“이 풍랑에 어찌 하시렵니까?”
“괜찮다. 내게 짐작이 있느니라.”
“하오나......”
“하오나, 어쩌자는 거냐. 가야 한다.”
“며칠만 더 기다려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연 삼 일 내게 현몽을 한 일이 있다.”
“어떠한 꿈이었는데요?”
“그 꿈은 알 것 없다.”
“더욱 궁금하옵니다.”
“걱정할 꿈이 아니고 길몽이다.”
“그러시다면......”
“아침이나 어서 먹어라. 어서 빠진 것 없이 해야지. 그 동백나무도 실었느냐? 그 향나무 판자도 실어야지, 잊지 말고. 듣거라! 나는 다시 한번 높은 곳에 가서 섬을 둘러보고 오마.”
하고 사또는 마지막으로 자주 놀러 가던 바위 있는 쪽으로 갔다.
배가 떠날 채비가 다 되었다.
“사또 나리, 사또 나리.”
“어서 오십시오. 채비가 다 되었습니다.”
“어서 오셔요, 나리.”
하고 뱃사람들은 불러 대었다.
그러나, 아직도 파도의 높이는 여전히 높고 거세었다. 사또는 이것저것 모르는 체하고 고의로 시간을 늦추었다.
“새벽부터 서둘던 사또께서 늑장을 부리다니.”
“이 파도에 어쩌자는 걸까.”
“글쎄 말이야.”
“좋은 꿈을 꾸었다면서.”
“그러면 몰라도.”
“아무래도 이상한 처사야.”
“사또는 배 사정을 잘 모른단 말이야.”
“사또가 제일 어른이니 하는 수 있나.”
“그건 그렇지.”
“가다가 몰살당할라.”
“인명은 재천일세.”
“그런 불길한 소릴랑 말게.”
기다리다 지쳐서 모두가 짜증이 나는데, 사또가 어슬렁어슬렁 도포자락을 날리면서 바닷가로 내려왔다. “채비가 다 되었읍니다.”
“그럼, 나만 타면 되느냐?”
“그러하옵니다.”
사또는 발을 한 발 배에 들여 놓자,
“아차.”
하고는 깜짝 놀라는 기색이었다.
“큰일 났구나.”
“큰일이라니요?”
“허허, 이 일을!”
“무슨 일이십니까?”
“그것 참.”
자못 말하기 싫은 듯이 입맛을 다시더니,
“담뱃대를.”
하고 또 입맛을 다시었다. 재빨리 눈치를 챈 부하 한 사람이,
“담뱃대를 어디 두고 오셨습니까?”
“그렇기는 한데!”
“그럼 가지러 보냅시다. 배야 좀 뒤에 떠나면 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멀어서.”
“어디십니까?”
“저, 우리가 놀던 큰 바위에 두었어. 담배쌈지하고......”
“가지러 보냅시다.”
“그럴까. 그럼 너희들 둘이 같이 가서 가지고 오너라.”
하면서 총각 한 사람과 처녀 한 사람을 지명하였다. 이 두 남녀는 서로 눈을 맞추어 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마침 잘되었다 싶었던 것이다. 서로 단둘이 이야기도 하고 가까이 하고 싶었던 사이였다.
“예!”
“예!”
하고 두 남녀는 빠른 걸음으로 큰 바위 있는 쪽으로 갔다. 큰 바위가 있는 곳까지는 상당히 시간이 걸렸다. 한 20분쯤 걸어가는 것을 보고 있던 사또의 얼굴은 비장하였다. 사또의 비장한 얼굴을 보고 있는 뱃사람들은 말없이 서로 얼굴만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겼던 것으로 짐작이 되었던 것이다.
“그 담뱃대를 찾을까?”
“찾고말고요. 그 담뱃대는 감사께서 선물한신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하는 말이지.”
하더니,
“배를 어서 띄워라.”
하고 배몰기를 재촉하였다. 뱃사공들은 또 한번 놀랐다.
“뭘 하고 있는 거냐? 어서 몰아라.”
“안 되옵니다. 저 총각 처녀는......”
“그러니까, 어서 몰아라. 그걸 모르느냐!”
하고 재촉하자 파도는 잔잔해졌다.
“이 때다. 닻을 들어라.”
배는 하는 수 없는 듯이 미끄러져 나갔다. 한 발, 두 발, 열 발, 백 발, 오 리. 한편 담뱃대와 쌈지를 들고 걸어오던 처녀 총각은 깜짝 놀랐다.
“배가!”
“저 배가.”
“안 됩니다.”
“우리는!”
“사람 살려요!”
이런 소리가 간신히 배에 들리는 듯하였다. 그러나, 사또는 호령했다.
“배를 돌리면 모두 죽는다. 어젯밤 꿈이다.”
무슨 뜻인지 잘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했다. 처녀 총각은 손을 휘저으며 뛰었지마는, 배는 이미 십 리쯤 대륙을 향하여 떠가고 있었다.
눈앞이 캄캄하였다. 배가 닿았던 자리까지 와서 보니 종이쪽지가 있었다.
‘3년 뒤면 또 우리가 온다. 너희들을 두고 가는 것은 하늘의 뜻이다. 우선 미안하다. 사또.’
하고 씌어 있었다. 눈앞이 캄캄해진 처녀 총각은 얼싸안고 울었다. 울다가 울다가 지쳐서 자고, 자다가 또 깨어 울고 또 울었다. 먹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남겨 두지 않았다.
한편 사또의 가슴은 쓰라리기 한이 없었다. 뱃사람들도 다른 사람들도, 두고 온 두 사람이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며칠씩 불고 불던 바람이 자고 파도가 조용해진 것이 신기하기도 하여,
‘우리는 살았다.’
하는 생각에서 모두 말은 아니 하나,
‘우리만이라도 살 수 있는 것은 그 처녀 총각을 섬에 두고 온 덕이다.’
하고 생각하였다. 섬에 남은 처녀 총각은 하는 수 없음을 깨닫고,
“울고만 있을 수 없다. 살 도리를 하자.”
“살 도리를 해야지.”
하며 먹이를 찾았다. 바닷가에서는 전복을 주워 먹고, 먹고 남는 것은 말리었다. 그리고 산에서는 머루나 다래, 찔레 열매를 땄다.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모두 줍고 캐고 따고 말리고 묶어서 나무에 매어달고, 굴에 감추고, 바닷물을 바위틈에 떠다가 담그기도 했다. 그럭저럭 먹고 살 수는 있었다.
그러나 달이 밝은 밤이나 파도가 잔잔한 날이면 고향 생각, 부모 생각, 친구 생각이 나서 괴롭기만 했다. 양지쪽에 찾아가 바다 밑에 굴도 팠다. 돌을 갈아서 칼도 만들고, 도끼도 만들었다. 나무를 베어서 통이 되도록 파기도 했다. 돌을 갈다가 보니, 돌이 뜨거워지기에 불을 일으키려고 애도 써 보았다.
그러나, 아직 불을 일으키지는 못하였다.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곧 겨울이 다가올 것을 예고하였다. 급한 것이 불을 일으키는 일이었다. 서리가 왔다.
“불을 일으켜야 하는데.”
“겨울일 곧 올 거야.”
“춥지 않아야 할 텐데.”
“추워도 불만 일으킨다면 살아가겠는데.”
“아니, 쌈지에 부싯돌이 있잖아.”
“글쎄 말이야.”
“그 쌈지를 찾아 와.”
“쌈지는 없어졌어.”
“내가 바닷물에 처넣은 지 오래야.”
“왜?”
“그놈의 담뱃대와 쌈지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된 거 아니야?”
“어쨌든 불은 일으켜야 해.”
“겨울이 곧 온 텐데.”
총각 처녀는 불을 일으키는 데 전력을 다하였지마는 불이 잘 일어나지 않았다. 서리가 자주 내렸다. 겨울이 올까 봐 겁이 났다. 불을 일으켜야 할 텐데 불을 일으키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눈이 뿌리기 시작했다. 겁이 더욱 많이 났다. 전에 배가 닿은 곳으로 가 보았다. 눈을 맞으며 바닷가에서 둘이는 얼싸안고 울기 시작했다. 울다가 보니 눈이 쏟아졌다. 사또가 원망스러웠다.
“사또사또 본토사또
담뱃대가 뭣이길래
그쌈지가 뭣이길래
이섬이 뭣이길래
우리인생 요래주나
이팔청춘 우리인생
죽음으로 인도하나
사또당신 잘살려고
어린인생 속여가며
배를몰래 몰아갔소
이원망 원한되어
본토사또 따라가며
꿈마다 생각마다
길이길이 현몽하고
두고두고 원망하리“
하면서 둘이가 울다가 보니 눈은 무릎에 차고 날은 어두워졌다.
달이 가고 해가 가고 그럭저럭 3년이 지나서 다시 그 사또 그 뱃사람들은 울릉도를 돌아봐야 했다.
“괜찮을까.”
“뭣이?”
“그 처녀 총각은 어찌 됐을까?”
“벌을 받을까 겁이 난다. 그 어린애들을 외딴 섬에 남겨 두고 왔으니.”
“하늘이 시키는 일인데.”
“우리야 원망 안 하겠지.”
울릉도에 사람이 가만히 와서 살세라 돌아 봐야 하는 사또 일행은 다시 3년 만에 울릉도에 도착했다. 3년 전에 두고 온 처녀 총각이 가장 궁금하고 미안했다. 역시 전에 닿았던 자리, 처녀 총각을 두고 온 그 자리에 배를 대었다.
“어쩌나!”
사또는 놀랐다. 바닷가 돌무더기 위에 처녀 총각 한 쌍이 얼싸안고 해골이 되어 있었다. 사또는 장만해 온 음식을 차려 놓고 총각 처녀의 넋을 위로하는 제사를 올렸다. 축을 읽는 사람의 목소리는 떨렸다. 절을 하는 사또의 손도 떨렸다. 따라갔던 뱃사공들의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쏟아졌다.
“미안하고 가련하다
본토사또 원망인들
오죽이나 하였으랴
하늘의 시키심을
낸들어이 거역하리
하고보니 후회되고
이제오니 더욱가련
앞으로 수만년을
이섬의 수호신되어
영구장천 우러르게
사당을 지으리다
길이길이 이섬에서
만백성 다스리며
명복이나 바리바리
먹고놀고 입고놀고
오래오래 잘지내소“
제사를 지내는 동안 하늘에서는 뇌성이 일고 번개가 쳤다. 사또는 더욱 겁이 났다. 일행도 겁에 질렸다.
이런 일이 있고부터 이 섬을 지나거나 이 섬에 들락거리는 사람은 이 사당(성황당)에 제사 지내는 것이 하나의 중요한 행사요 관습이 되었다. 이 성황당(사당)이 바로 지금의 태하의 성황당이요, 울릉도에는 많은 성황당이 있지마는 그 중에서도 으뜸가는 성황당으로 치고 있다.

또 다른 이야기

벼슬아치가 기생과 노니는 모습을 본 해신이 노하여 풍랑을 일으켜 동해의 외딴섬으로 표류케 하였다. 그들은 고향에 돌아가려 했으나 갈수가 없었다. 그 때 홀연히 신령이 나타나 그들에게 청을 한가지 하는데…

안무사라는 벼슬아치가 삼척을 떠나서 해안을 순찰할 목적으로 바닷가를 돌아보는데, 기생을 배에 태우고 술을 마시면서 흥을 돋구었다. 이 때 해신이 노하여 풍파를 일으키고, 따라서 그 배는 바다로 흘러서 울릉도에 도착했을 때는 돛이 모두 부러졌을 때였다.
양식이 떨어져서 배에 탔던 일행은 황토흙을 파먹기도 했다. 고픈 배를 황토흙으로 채운 일행은 해안에서 잠이 들었다.
안무사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더니 안무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나는 성인봉의 산신령이다. 그대들의 딱한 사정을 보고 먹을 것을 대접했다. 이제 시장기는 풀렸느냐?”
“신령님, 감사합니다. 저희들을 고향에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고향에 가게 해 주마. 그러나, 내 청을 하나 들어야 하느니라.”
“무엇이라도 시키는 대로 하리다.”
“해가 지는 쪽으로 배를 몰아라. 그러면 고향에 가리라.”
“예, 고맙습니다.”
“아직 또 하나 말할 것이 있다. 너희들 중에 남자 한 사람, 여자 한 사람을 이 섬에 남겨 두고 가야 한다.”
“예?”
“만약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너희들은 모두 물귀신이 된다.”
안무사는 일행을 독촉하여 배를 해가 지는 쪽으로 몰게 했다. 모두들 고향에 갈 수 있다고 좋아했는데, 파도가 다시 크게 일어서 도로 섬으로 오게 되었다. 그날 밤에 신령님이 나타나서는,
“너는 왜 약속을 어기느냐? 약속을 어기면 모두 이 섬에서 죽게 하리라.”
하고 사라졌다. 이튿날 다시 배를 몰았다. 배를 몰다가 안무사는,
“얘들아, 내가 담뱃대를 저 바위에 두고 왔구나. 가서 가져오너라.”
하고 남녀 한 쌍을 보냈다. 그 남녀가 담뱃대를 가지러 간 사이에, 안무사는 명령했다.
“어서 배를 몰아라. 저 둘이 이 섬에서 부정을 하였기에 산신령의 노여움을 받았으니 여기 두고 가야 한다.”
배는 바다 가운데로 떠났다. 담뱃대를 가지러 간 그 남녀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사람 살려요.”
하였으나, 배에 탄 일행은 안타까움을 꾹 누르며 배를 바다로 바다로 몰 수밖에 없었다.
다음 해 안무사는 다시 울릉도에 와 보았다. 골짜기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지난해에 섬에 남겨 두고 간 그 사람들이었다.
“살아 있었구나. 원망인들 오죽했으랴.”
하며 가까이 가서,
“여보게.”
하고 불렀다. 답이 없었다. 흔들어 보았다. 지금까지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이던 두 남녀는 옷만 남기고 몸이 연기로 화하여 폭삭 사라졌다. 안무사의 손이 닿자 연기로 사라졌다. 안무사는 자기들이 살기 위하여 이 두 사람을 희생시킨 것이 미안했다.
“오! 내가 저네들을 죽였구나.”
하고 안무사는 그 자리에서 대성통곡하였다.
이들의 원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그 자리에 사당을 짓고 그들의 입었던 옷을 모시었다. 새로 이주해 온 사람들은 이 사당을 극진히 섬기게 되었다.

할배 대접

외지인이 울릉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려 새 배를 지어 들어왔는데,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너는 할배 대접도 할 줄 모르느냐?”하고 사라졌다. 그것을 무시한 외지인은 결국 풍랑을 만나 죽게 되었다.

강원도에 사는 어부가 새로 배를 한 척 지어서 울릉도로 왔다. 주로 울릉도 근해에서 고기잡이를 할 목적으로 새 배를 지었다.
처음으로 태하에 와서 선주가 자게 되었다. 곤하게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꿈에 노인이 나타나더니,
“너는 할배 대접도 할 줄 모르느냐?”
하고 사라졌다. 그 선주는 잠을 깨어서는 다시 잠이 들지 않아 밤을 새우고 그 이튿날도 지나고 또 밤이 되어서 잤다. 꿈에 또 노인이 나타나더니,
“너는 할배 대접도 할 줄 모르느냐?”
하고 사라졌다.
그 이튿날 선주는 비로소 태하 마을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였다.
“성황당에 제사를 지내시오.”
“제사요?”
“제사를 지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제사 못 지내요.”
“제사를 지내는 게 좋을 것이요.”
“우리는 교인이라서 우상을 섬길 수 없소.”
“정말 그러시면 하는 수 없지요.”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또 잠을 잤는데 역시 선주의 꿈에 노인이 나타나더니,
“너는 할배 대접도 할 줄 모르느냐?
하고 사라졌다. 선주는 잠이 깨었다. 여러 시간을 고민했다. 아니, 며칠 동안 줄곧 고민을 한 것이다.
“제사를 지낼까?”
“안 된다.”
“지낼까?”
“안 된다.”
“제사를 지내야 좋다는데.”
“믿음이 모자라는 소리 마라.”
결국 제사는 안 지내기로 했다.
다음날 태하 앞바다에서 그 배는 파선이 되어 선주와 선원은 모두 죽고 말았다. 파도가 센 것도 아닌데 파선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진수식 전설

새로 배를 지으면 성황당에서 진수식을 하는 풍습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무시한 한 사람은 결국 고기잡이 도중 갑작스런 파도에 바다 귀신이 되었다.

새로 배를 지으면 진수식을 하는 풍습이 있다. 이 진수식 때는 여러 가지 빛깔의 깃대를 수십 개 세워서 배를 꾸미고, 돼지를 잡고 술을 받고 무당을 데리고 섬을 한 바퀴 돌면서 노래 부르고 춤을 추다가 태하의 성황당에 가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었다.
한 사람이 배를 새로 지었다.
“여보, 우리도 진수식을 해야지요.”
“진수식이 다 뭐요.”
“아니, 진수식을 해야 배가 안전하다는데.”
“우리는 그런 것 안 해.”
“온 섬사람이 다 진수식을 하는데 우리만 안 하다니요.”
“우리는 교인이요.”
“그래도요.”
“돈도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우상을 숭상할 수는 없어요.”
“우상이라고만 말해 치울 일이 아닐 텐데요.”
“우상이지 뭐요. 미신이고 우상이지 그까짓 것 성황당에 절을 하고 술을 권하고 하다니.”
“좋은 게 좋다는데 우리도 진수식을 합시다.”
“안 된다니까.”
남편은 성을 버럭 내었다.
선장도, 선원들도 진수식을 하지 않으면 배를 부리지 않겠다고 버티었다.
“목숨을 걸고 바다에 나갈 수는 없어.”
“모두가 하는 진수식을 안 하다니.”
“진수식을 안 하면 해를 본다던데.”
“성황당 제사를 꼭 지내야 해.”
하면서 선원들도 이 새 배를 부리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부려 보지. 미신은 필요 없다는 걸 내가 몸소 보이리라.”
하고 이 배의 선주는 자기가 스스로 배를 부려서 바다로 나갔다. 물론 멀리 간 것도 아니고 가까운 곳에 몰고 갔다.
날씨는 맑고 바람은 잔잔했다. 처음에는 섬 가까이만 돌다가 차차 섬에서 좀 멀리 나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역시 바람이 없고 파도도 고요하던 바다가 갑자기 미친 듯이 뒤집어지는 듯하더니 배를 휘몰아 바위에 받았다. 배는 수박을 쪼개어 놓은 것처럼 쪼개어져서 바다를 헤엄쳤다. 선주도 물론 바다 귀신이 되었다.
“진수식을 안 한 탓이야.”
“미신이 아니라니까.”
“어쨌든 불행한 일이야.”
하였지마는 이미 할 수 없게 된 뒤였다.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는 진수식을 꼭 가져야 한다는 풍습이 생겼다. 태하에 성황당은 영험이 있다고들 말하게 되었다.

울릉도 심청이

울릉도 삼선암 근처에서 용왕의 딸이 육지의 왕자를 데리고 물에 빠졌는데 그 자리에 삼선암이 솟아났다고 전한다.

천부동에서 도동으로 가는 뱃길에서 가장 물결이 거센 곳이 삼선암 근처이다. 이 삼선암 근처에는 1년에 한 번씩 7월이 되면 처녀를 물에 제사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고 전한다.
용왕에게 처녀를 바쳐서 뱃길이 안전하도록 하자는 믿음에서 온 습관이라고 보인다. 또 이 근처에는 용왕의 딸이 울다가 왕자(육지의)를 데리고 물에 빠졌는데 그 자리에 삼선암이 솟아났다고도 전해 내려온다.

점치는 집

낭떠러지 밑에 초가집이 한 채 있었는데 그 집 앞길에 핏방울이 흘려져 있으면, 바다가 몹시 거칠어 파도가 높았다고 전한다.

서면의 골개에 낭떠러지가 있고, 그 낭떠러지 밑에 초가집이 한 채 있었다. 하루는 자고 일어나니 집 앞길에 핏방울이 몇 방울 흘려 있었다. 이상하게 여겼으나 그 피가 흐른 까닭을 알 수는 없었다.
또 얼마를 지나고 나서 똑같은 일이 생겼다. 가끔 이렇게 피를 흘리는 일이 있어서 이 집 주인은 곰곰 생각하고 따져 보았더니, 그 피가 흐른 날은 바다가 몹시 거칠어 파도가 높았다.
그 뒤부터는 이 집 주인이,
“오늘은 바다에 나가지 마시오.”
하면 온 섬 사람들은 바다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이 집을 ‘점치는 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헛 것

안개 낀 날 또는 조업에 지쳐 기운이 없을 때 앞을 가로막는 큰 기선을 만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기선을 피해 가려면 암초에 걸리게 된다 한다.

배의 선장 노릇을 2, 30년 하노라면 큰 파도도 만나고, 돌풍도 만나며, 2, 3일을 계속해서 향해를 해야 할 때도 있다 한다.
안개가 낀 날이면 섬을 수 미터 옆에 두고도 모르고 지나가서는 당황하여 먼 곳까지 지나쳐 버리기도 한단다.
3, 4일을 향해하다가 보면 잠도 잘 자지 못하고 기운도 지쳐서 앞을 가로막는 큰 기선을 만나는 수가 있단다.
특히 조난을 당하거나 섬을 찾지 못하여 당황해서 2, 3일을 향해할 때 이런 큰 배가 앞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앞을 가로 막는 기선이나 군함이 있다고 하여 그 기선이나 군함을 피해 가려면 암초에 걸리게 된다 한다. 용감하게 그 기선이나 군함을 가로질러 가야 한다고 한다.

살아 있는 주검

배를 부리고 가노라면 혹 시체가 따라오는 수가 있다 하며, 그럴 때는 이 시체가 어떤 사람이건 잘 건져다가 장례를 지내 주어야 그 배는 그 뒤부터 행운을 잡는다고 한다.

배를 부리고 가노라면 혹 시체가 따라오는 수가 있다 하며, 그럴 때는 이 시체가 어떤 사람이건 잘 건져다가 장례를 지내 주어야 그 배는 그 뒤부터 행운을 잡는다는 것이다.
반면에 배를 따라오는 주검을 돌보지 않고 말면, 그 배는 해를 보거나 재수가 없어서 고기잡이가 잘 안되고, 배는 고장이 잘 난다는 이야기이다.

와달리 용굴

옛날 옛적 와달리의 굴 근처에 안개가 끼어 지척을 분간할 수 없게 되더니 번개가 치고 오색구름이 하늘까지 뻗치고 용이 나와서 하늘로 올라갔다 한다.

동쪽으로는 죽도(댓섬)가 보이고, 동북쪽으로 깍새섬(관음도)이 보이는 울릉도 동쪽 절벽 밑에 ‘와달리’라는 마을이 있다. 몇 집밖에 살지 않는 마을인데, 이 와달리 마을의 남쪽 바닷가 절벽 밑에 큰 굴이 있다. 이 굴의 앞에는 큰 바위가 있어서 바다로 배를 항해해서는 이 굴의 모습이 보이지 아니한다. 또 이 굴의 절벽을 기어오르는 길이 있는데 어찌 보면 길이요, 어찌 보면 붉은 문을 드리어 놓은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길도 아니고 문을 드리운 것도 아니고 다만 절벽일 뿐이라 이 굴은 수천 명이 들어갈 수 있으며, 그 깊이는 아무도 모른다. 옛날에 하루는 이 굴 근처에 안개가 끼어 지척을 분간할 수 없게 되더니 번개가 치고 오색구름이 하늘까지 뻗치고 무엇인가 하늘로 올라가는데, 자세히 보니 용굴에서 커다란 용이 나와서 절벽을 기어올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면서 기이한 소리를 내더라는 것이다. 그 뒤부터 이굴을 ‘용굴’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또 일설에 의하면 이 용굴은 본토의 어느 부분과 연결되어 있어서 여기서 연기를 내면 그 연기가 본토에 가서 나온다고 한다.

황토구미

삼척의 어느 사또가 관비를 데리고 선유(船遊)놀이를 하다가 풍랑을 만나 이곳에 표착하였다. 먹을것이 없던 일행들은 그 곳의 붉은 흙을 먹고 연명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맛이 모두 달랐다고 한다.

황토굴에 많은 양의 황토가 있어 황토구미라 한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의 황토가 나라에 상납까지 되었다고 하며 조정에서는 3년에 한번씩 삼척영장을 이 섬에 순찰을 보냈는데, 순찰의 증거품으로 이곳 황토와 향나무를 받았다고 한다. 황토굴 가기 전에 오르는 길을 따라가면 울릉도에서 제일 큰 태하 등대가 나오는데, 이곳은 유인등대이며, 광달거리는 18마일이다. 등대로 오르는 길과 등대에서 바라보는 경관이 뛰어나다.
삼척의 어느 사또가 관비를 데리고 선유(船遊)놀이를 나갔다가 급작스러운 풍랑을 만나 이 울릉도에 표착(漂着)하게 되었다. 그 당시 이 섬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다. 식량의 준비가 있을 리 만무한 이곳에 모두가 굶주림에 허덕이게 되었다. 이리저리 먹을 것을 구하려 헤매였으나 먹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가 허기에 지쳐 있었는데 그 중, 누가 황토를 발견하고 궁한 나머지 이 흙이라도 하고는 입에 조금 넣어 씹어 보았더니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그래서 이 흙을 먹고 모두가 연명을 했는데 먹어본 그 맛이 모두가 다르다고 해서 이 곳을 가리켜 황토구미(黃土九味)라고 불렀다고 한다.

현포

옛날 동해상에서 조업하다가 풍랑을 만나면 표류하다가 빈번하게 도착한 곳이 이곳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그곳에 몇 가구가 정착하게 되었고 그곳을 현포라 불렀다 한다.

옛날 옛적에 경상도 경주 근처에 현동(玄洞)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이 곳 사람들은 바다에 나가서 고기잡이하는 일이 주업이었는데,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다가 풍랑을 만나면 정처 없이 떠다니다가 무인도인 이 울릉도에 도착하여 며칠동안 묵고 돌아가기도 하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살기 좋겠더군."
"좋다 뿐이랴."
"여기서 못사는 것보다 거기 가서 밭이나 갈고 살까."
"나도 거기나 가서 살고 싶어."
"떠나 볼까."
"그래."
이렇게 상의가 되어서 남부여대하고 몇 가구가 울릉도로 향해서 닻을 내린 곳이 이 마을이었다. 움막을 짓고 밭을 개간하고 배를 손질하며 살다가 보니 마을 이름이라도 있어야 했다.
"뭐라는 게 좋을까?"
"마을 이름이라도 있어야지."
"그렇고 말고."
"현동에서 왔으니 현동이라 하지."
"그것도 좋은데."
"여기 자갈이 많은 곳이지."
"그렇지 자갈밭이지. 현동의 ‘현’하고 포전이란 ‘포’를 붙여 ‘현포’가 어때?"
"현포, 현포 듣기가 좋은데."
"그래그래 현포가 마을 이름이다."
"현포, 검은 돌이 많은 밭이라 좋아."
이렇게 하여 현포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