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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청무명

직물해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면직물은 무명, 광목, 옥양목이다. 옛 우리 의복 규범에는 “검박(儉朴)한 옷을 입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검박이란 지나치지 않고 합당하게 입으라는 뜻이다. 검박한 옷감으로서는 면직물이 으뜸이다. 우리나라의 면직물의 기원은 일반적으로 고려조 문익점 선생에 의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한원>의 고구려 기사에 ‘조백첩포(造白疊布)’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 백첩포는 면직물의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 문익점 선생의 면종자 반입 이전에 면직물 제직이 가능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의 기록에 따르면, 정천익이 목화 재배에 성공하고, 그 뒤 호승(胡僧) 홍원(弘願)에게 직조 기술을 배워 가비(家婢)에게 한 필의 면직물을 짜게 하여 면직물 제직을 시작한 뒤 10년이 채 못되어 이 직물이 전국으로 퍼지게 되었는데, 공양왕 3년(1391)에는 백성에게 값비싼 비단 대신 무명을 쓰라는 영이 내려졌다고 한다. 또한 <태종실록(太宗實錄)>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시대 태종 1년(1401) 에는 백성 상하가 다 무명옷을 입었다”고 한다. 무명은 짧은 섬유를 모아 이어 실을 자아 베틀에서 짜낸 것이므로, 그 표면이 천태로 들고 나서 자동 직기로 짜낸 광목, 옥양목에 비하여 변화가 풍부하다. 게다가 섬유의 천성이 온화하고 기교가 없어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상 옷감에 아주 적합하였으며, 이불, 요, 베갯잇으로 사용하였을 때 광목, 옥앙목 보다 온화하고 푸근한 느낌을 줄 수 있었다. 또한 무명은 춘하추동 어느 계절에나 사용될 수 있는 의복 재료로 수요가 많았다. 무명은 세탁 시 양잿물을 넣어 삶았는데, 삶아서 빨아 말린 것은 풀을 하여 손으로 만져 그냥 다리거나 다듬어서 쓰기도 하였다. 무명 역시 여인들의 만지는 솜씨에 따라 태어나는 모습이 달랐던 옷감이다. 한편 무명, 광목, 옥양목은 소한 것, 흰 것 그대로도 사용하였으나 염색을 하여서도 많이 사용하였다. 강릉 지역에서는 무명에 짙은 남염을 한 치마를 많이 지어 입어 오늘날까지 많은 유품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