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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유복식고려시대 미륵하생경변상도의 추수하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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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미륵하생경변상도의 추수하는 농부

구성점

두건 저고리 바지

관련자료

고려시대 미륵하생경변상도의 단갈을 입은 천인(賤人)
고려시대 삼재도회의 철릭을 입은 평민 남자
조선시대 농부
조선시대 보리타작하는 농부

설명

고려시대 민(民)을 흔히 백정(白苧)이라 한다. 대개 백정이라고 하면 도살업에 종사한 조선시대 천한 신분의 사람을 생각하는데, 고려시대의 백정은 일반 백성을 뜻하는 용어이다. 백정층은 군현 지역에 거주하면서 국가에 대해 조세와 역역을 부담한 일반 농민층으로, 조선시대의 양인 농민층에 해당된다. 백정층에는 토지를 경작해서 가계를 꾸려가는 자영 농민층도 있고, 소유지가 부족해 남의 토지를 빌려 경작해서 가계의 수입을 보충하는 전호 농민층도 있었다.
한편 고려시대 서민 중 백정층 외에 잡척(雜尺)층도 있었다. 이들은 농업을 통해 생계를 꾸려가면서 공해전, 둔전(屯田)과 같은 국가의 토지경작에 동원된 향(鄕), 부곡(部曲)인, 금, 은, 소금, 종이 등 각종 수공업 제품과 농수산물 생산에 동원된 소(所)의 주민, 장처전(莊處田)을 경작해서 궁원과 사원에 조세를 납부하는 장과 처의 주민이다. 이들은 향, 부곡, 소 등 부곡제 지역에 거주했으며 백정 농민층에 비해 위와 같은 추가역을 부담했기 때문에 백정 농민층보다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있는 하층민이었다.

이들과 달리 향리, 군인과 같이 국가에 대해 일정한 직역을 갖는 계층을 정호층이라 한다. 정호층은 지배질서에 참여할 권한이 있다는 점에서 넓게는 지배층의 범주에 속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려시대 대표적인 민(民)계층 백정 농민은 평균 1결의 농지를 소유했다. 고려 전기 1결의 면적은 대체로 오늘의 1200평, 즉 6마지기 정도가 된다. 그러나 고려 후기부터 20석이 생산되는 면적을 1결로 정함에 따라 1결의 절대면적은 토지의 비옥도에 따라 들쭉날쭉하게 된다. 당시 1결의 농지에서 나오는 최고 생산량으로도 기본 생활경비를 충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 경조사나 예상 밖의 지출은 그대로 부채로 안을 수밖에 없었다. 자식을 팔아 빚을 갚은 일이 기록에 자주 나타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러한 적자를 보충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당시 정부가 적극 장려한 개간을 통해 소유 토지를 늘려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외에도 돼지, 닭 등 가축을 기르거나 채마밭을 경작한다거나, 남의 토지를 빌려 경작한다거나, 땔감이나 약초, 나물을 채취하는 방식으로 부족한 생계를 보충해 나갔다.

고려 중기 문장가 이규보는 당시 농민의 처지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햇곡식 푸릇푸릇 아직 논밭에 자라는데, 아전들 벌써 세금걷는다 야단이네... 붉은 알몸 짧은 갈옷으로 가리고 하루에도 밭갈기를 얼마였던가. 그리하여 벼싹 파릇파릇해지면 가라지 피매기에 괴로울 따름. 풍년 들어 천종의 곡식을 거둔다 해도 한갓 관청에 바치는 것일뿐. 어쩌지 못하고 다 빼앗긴채 돌아오니 가진 것이라고는 한 알도 없네." 한편 이인로가 지은 <파한집>에 실려 있는 시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하루 종일 뙤약볕 아래 농사를 지어도 한 말의 조를 얻을 수 없구나. 바꾸어 조정에 있기만 하면 앉아서 만 섬의 곡식을 먹을 수 있구나." 위의 시는 무인쿠데타가 일어나기 직전 의종이 전국의 역이나 원에서 지은 시를 수집한 것 가운데 하나로, 무인정권기 농민항쟁 폭발 직전 어려운 농민의 처지가 잘 표현되어 있다.

1350년에 제작되어 일본 오방적정원(五坊寂靜院,親王院)에서 소장하고 있는 미륵하생경변상도에는 그림 하부 우측에 고려시대 추수하는 농민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벼를 베는 사람과 도리께로 타작하고 떨어진 낱알을 쓰는 등의 갖가지 풍요로운 가을 정경은 "비가 때맞추어 내려 곡식이 풍성하게 자라고 한번 심어 7번이나 수확한다"는 하생경의 표현을 도상화시켰다 할 수 있다. 그림 속에서 추수하는 농민들의 복식은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있고, 저고리와 바지를 착용하였으며 저고리는 허리부분의 대로 고정되어 있다. 허리 아래로 옆선에 트임이 있는 저고리는 백색이거나 붉은 계열, 혹은 녹색계열이며, 바지는 모두 흰색에 가깝다. 특징적인 것은 바지의 통이 매우 좁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한국복식사(2001) / 안명숙,김용서
한국의 미7-고려불화(1994) / 중앙일보사
5백년고려사(1999) / 박종기

색측정값
RGBLa*b*NCS
64/50/1340/-3/87010-G50Y
212/125/7862/18/243030-Y50R
229/206/15579/4/152010-Y30R
애니메이션 표현 Tip

1. 둔부까지 내려오는 소박한 질감의 저고리는 허리 아래로 옆트임이 있어 자유롭게 움직이기에 적합하다.
2. 소매통이 좁고, 특히 바지의 통이 매우 좁아 주름이 거의 잡히지 않는다.
3. 논을 배경으로 한 농부의 작업특성상 신을 신고 있지 않는다.

착용특징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저고리와 바지를 착용하였다.

머리에 두른 흑색 두건은 뒤쪽에서 여며주었다.

저고리는 곧은 깃을 오른쪽으로 여며 착용하였고 허리에 대를 둘러 앞에서 묶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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