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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유복식고려시대 가마꾼_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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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가마꾼_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

구성점

관모 포 바지

관련자료

고려시대 미륵하생경변상도의 하리(下吏)
고려시대 둔마리고분의 평민 여자

설명

국보 제 101호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에는 보련(寶輦), 즉 임금이 타던 옥교를 메고 가는 고려시대 가마꾼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이와 비슷한 이들의 모습은 고려불화 중 미륵하생경변상도의 좌측 하단에 묘사되어 있는 인물들과도 유사하다. 이들은 흑색 관모를 머리에 쓰고, 무릎까지 오는 둥근 깃의 단령포를 착용하였으며 통이 좁은 바지를 착용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착용하고 있는 관모의 형태이다.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은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에 있던 탑으로서, 국권침탈 직후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반환되어 경복궁으로 옮겨졌다. 지광국사의 입적 연도와 더불어 1085년(고려 선종 2)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이 가능할 것이다.

탑의 표면에 조각되어 있는 인물들은 고려시대 관에서 부리는 하인급의 직위를 맡은 자, 즉 하리급으로 추측할 수 있는데, 이들이 직급별로 착용했던 다양한 의복은 <고려도경> 제 21권에 나오는 조례조에 나타나 있다.

이직이란 서리를 말하는 것으로 복색은 서관과 같았으며 조선 왕조의 아전 계급을 칭하는 것이다. 호장은 자삼에 홍정서대를 띠고 상홀을 들었으며(3,4품이상) 부호장 이하 병창정 이상은 조관복에 해당하는 복두, 흑정각대, 상홀을 하였으며(5,6품), 호정 이하 사옥부정 이상은 서관복(7,8,9품)에 해당하는 녹삼, 흑정각대, 목홀로 그 복식을 이루었다. 이를 통해 볼 때 고려시대 이들에 대한 높은 대우를 알 수 있다.

주부군현의 의는 심청삼에 홀을 갖추지 않았고, 병창리, 제단사는 천벽삼을 입고, 역시 홀을 갖추지 않았다. 인리란 주현의 금곡과 포백을 출납하는 이들로 복두, 조의에 흑혁대, 구리를 신었다. 관부에 들어갈 때에는 색의를 입으며 우왕 대에는 복두 대신 평정두건을 착용하게 되었다. 정리는 사령 역할을 하는 자로 승급하면 서리가 되었다. 높은 관에서는 각각 정리를 두어 심부름을 시키는데 일할 때에는 문라두건을 쓰고 중국사신이 올 때에는 책을 쓰며 조의를 착용하였으나 고려말 우왕때 황의로 개정되었다.

방자는 사관에서 잡역을 맡아보는 자로 문라두건을 쓰고 자의에 각대를 띠었으며 조리 즉, 마로 만든 검은 미투리를 신었다. 우왕 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소친시란 궁중에서 심부름을 하는 10여세의 소동을 일컫는데, 성장하면 출궁하였다. 자의에 두건을 쓰고, 머리를 뒤로 드리웠으며 우왕 때에 자의에 자라두건, 세조전대가 되었다. 당시 미성년은 흑건을 쓰고 머리를 뒤로 늘어뜨렸고, 결혼하면 속발하였다. 구사는 서관 소리의 노복을 말하는데 삼수에 오건을 썼다. 한편 귀한 집의 미혼 자제를 선랑 또는 구사라 하여 이들은 검은 사 혹은 나로 옷을 입고 오건을 썼다. 산원이란 무반계통의 장정들이 모인 단체의 일원으로 자라착의를 입고 복두를 쓰고 혁리를 신었다.

참고문헌

한국복식사(1998) / 유송옥
한국복식사(1999) / 김영숙,김명숙
(국역)고려도경(1977) / 서긍

색측정값
RGBLa*b*NCS
0/0/025/0/09000-N
178/89/4853/19/204030-Y60R
37/16/331/-1/78010-G70Y
255/252/22993/1/40502-Y50R
애니메이션 표현 Tip

1. 관모는 마포나 갈포의 재질감을 갖는다.
2. 단령포의 품은 넉넉하나 고위관리의 포와 비교하여 흐르는 듯한 주름이 적다.
3. 단령포의 표면은 상류계급이 착용한 것에 비해 소박한 질감을 갖는다.

착용특징

머리 위에 높게 솟아 오르는 형태의 관모를 쓰고 단령의 포를 착용하였다.

관모는 양 귓가로 내려뜨린 끈을 턱 아래서 매듭지어 고정하였다.

단령은 길고 둥글게 만든 옷깃으로 목을 둥글게 감싼 후 매듭 단추로 오른쪽 어깨에서 여미어 입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