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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유복식고려시대 미륵하생경변상도의 하리(下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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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미륵하생경변상도의 하리(下吏)

구성점

복두 포

관련자료

고려시대 가마꾼_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
고려시대 삼재도회의 철릭을 입은 평민 남자

설명

고려시대 하리(下吏)는 서리급 및 관에서 부리는 말직(末職)에 해당하며 이들의 의복은 <고려도경> 제 21권에 나오는 조례조에 상세히 나타나 있다.
이직(吏職)이란 서리(胥吏)를 말하는 것으로 복색은 서관(庶官)과 같았으며, 조선 왕조의 아전 계급을 칭하는 것이다. 호장(戶長)은 자삼(紫衫)에 홍정서대를 띠고 상홀을 들었으며(3,4품이상), 부호장(副戶長) 이하 병창정(兵倉正) 이상은 조관복(朝冠服)에 해당하는 복두, 흑정각대, 상홀을 하였으며(5,6품), 호정(戶正) 이하 사옥부정(司獄副正) 이상은 서관복(7,8,9품)에 해당하는 녹삼, 흑정각대, 목홀로 그 복식을 이루었다. 이를 통해 볼 때 고려시대 이들에 대한 높은 대우를 알 수 있다.

주부군현의 의는 심청삼(深靑衫)에 홀을 갖추지 않았고, 병창리(兵倉吏), 제단사(諸壇司)는 천벽삼(天碧衫)을 입고, 역시 홀을 갖추지 않았다. 인리(人吏)란 주현의 금곡(金穀)과 포백(布帛)을 출납하는 이들로 복두, 조의에 흑혁대, 구리(句履)를 신었다. 관부에 들어갈 때에는 색의를 입으며 우왕 대에는 복두 대신 평정두건을 착용하게 되었다. 정리(丁吏)는 사령 역할을 하는 자로 승급하면 서리가 되었다. 높은 관에서는 각각 정리를 두어 심부름을 시키는데 일할 때에는 문라두건을 쓰고 중국사신이 올 때에는 책을 쓰며 조의를 착용하였으나 고려말 우왕때 황의로 개정되었다.

방자(房子)는 사관에서 잡역을 맡아보는 자로 문라두건을 쓰고 자의에 각대를 띠었으며 조리 즉, 마로 만든 검은 미투리를 신었다. 우왕 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소친시(小親侍)란 궁중에서 심부름을 하는 10여세의 소동을 일컫는데, 성장하면 출궁하였다. 자의에 두건을 쓰고, 머리를 뒤로 드리웠으며 우왕 때에 자의에 자라두건, 세조전대가 되었다. 당시 미성년은 흑건을 쓰고 머리를 뒤로 늘어뜨렸고, 결혼하면 속발(束髮)하였다. 구사(驅使)는 서관소리(庶官小吏)의 노복(奴僕)을 말하는데 삼수에 오건을 썼다. 한편 귀한 집의 미혼 자제를 선랑 또는 구사라 하여 이들은 검은 사(紗) 혹은 나(羅)로 옷을 입고 오건을 썼다. 산원(散員)이란 무반 계통의 장정들이 모인 단체의 일원으로 자라착의를 입고 복두를 쓰고 혁리를 신었다.

고려불화 미륵하생경변상도에서는 각대를 띠고 복두 혹은 두건을 쓴 하리복의 예를 볼 수 있는데, 차림새로 보아 고려시대 방자복과 가장 가깝다 할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복식사(1998) / 유송옥
한국의복식문화(2000) / 백영자,최해율
한국의 미7-고려불화(1994) / 중앙일보사
(국역)고려도경(1977) / 서긍

색측정값
RGBLa*b*NCS
0/0/025/0/09000-N
178/89/4853/19/204030-Y60R
223/189/11875/6/252020-Y20R
애니메이션 표현 Tip

1. 흑색 복두는 뒷부분에 붙어있는 긴 양각이 아래로 쳐져있으며 반투명 재질로 가볍게 표현하였다.
2. 착용하고 있는 단령포가 상류계급이 착용한 것에 비해 폭이 좁고 소박한 질감을 갖는다.
3. 포의 양 옆에 트임이 있어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하다.

착용특징

머리에는 복두를 쓰고 단령포를 착용하였다.

단령은 길고 둥글게 만든 옷깃으로 목을 둥글게 감싼 후 매듭 단추로 오른쪽 어깨에서 여미어 입는 것이다.

바지는 통이 상당히 좁고 길이는 발목까지 오게 착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