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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유복식고려시대 승려_대각국사 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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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승려_대각국사 의천

구성점

가사 장삼

관련자료

고려시대 관경변상도의 승려
조선시대 송낙을 쓴 승려
조선시대 고깔을 쓴 승려
고구려시대 쌍영총의 승려

설명

대각국사 의천은 문종의 아들이었다. 대각국사(大覺國師)의 이름은 후(煦)이고 자는 의천(義天)이다. 고려 문종 인효왕(仁孝王)의 넷째 아들인 그는 왕자로서의 영화를 사양하고 승려가 되어 뒷날 우세승통(佑世僧統)에 봉해졌다. 시호는 대각(大覺)이며 문집 18권이 있고 영정은 선암사(仙岩寺)에 모셔져 있다. 고려는 불교 국가였으므로 승려 계급이 높았다.
고려 지배층 가운데 아들이 여럿 있는 사람은 그 중 한 아들을 승려로 출가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한다. 승려가 될 자식은 출신 신분이 높든 낮든 어려서부터 사원에 들어가 행자(行者)가 되어 밥짓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등 고된 수련을 쌓아야 했다. 이 시련을 통과해야만 승려 생활을 수행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고된 행자 생활이 끝나면 사미계(沙彌戒)를 받고 사미승이 되어 스승을 정하게 된다. 여기서 정해진 스승의 가르침을 받은 후 구족계(具足戒)를 받으면 그때부터 독립된 한 사람의 승려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어서 정식 승려가 되려면 국가의 공인이 있어야 했다. 불교 승려들이 보는 과거를 승과(僧科)라고 하는데, 국가에서는 승과에 합격한 승려를 다른 관리와 마찬가지로 국가의 공식적인 품계 조직에 포함시켰다.

승가에는 교종 승려를 선발하는 교종선과 선종 승려를 선발하는 선종선, 두 종류가 있었다. 교종선은 개경의 왕륜사에서, 선종선은 광명사에서 실시했다. 이러한 승과에 합격하면 우선 대선(大選)이라는 품계를 받게 된다. 그리고 다른 관직처럼 차례차례 승진하게 되는데, 그 정점에는 교종, 선종 구별없이 왕사(王師), 국사(國師)로 불리는 최고의 영예직이 있었다.

한편 국가에서는 불교를 관리하는 기관인 승록사(僧錄司)를 두어 승려와 교단 관련 업무를 관리하고 국가의 중요한 불교 행사를 주관하게 했다.

승려의 기본복식은 가사와 장삼인데, 승려계급이 매우 높았던 고려시대 승려복식에는 비단이 사용되기도 했다. 승려는 길을 갈 때 석장을 짚고 가는데, 꼭대기는 탑모양으로, 그 아래는 연꽃 모양으로 다듬었다. 머리 부분에는 벌레들이 듣고 피해 가라며 고리를 달아 소리를 냈다. 승려의 필수품 중 하나는 정수(淨水)를 넣는 정병이다. 여기 넣는 정수는 중생의 고통과 목마름을 덜어주는 감로수와 통한다.

참고문헌

우리옷이천년(2001) / 문화관광부(유희경 외)
한국복식문화사(1998) / 유희경,김문자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1999) / 한국역사연구회

색측정값
RGBLa*b*NCS
219/60/151/61/632570-Y60R
90/89/5637/-4/196010-G50Y
111/68/6334/19/116010-Y90R
244/232/19992/0/181005-Y50R
251/218/14589/5/401020-Y20R
애니메이션 표현 Tip

1. 가사와 장삼으로 사용된 직물은 비단의 일종이다.
2. 가사는 108쪽의 헝겊조각을 바둑판 모양으로 모아 만든 장방형의 천을 꿰매어 만들었다.
3. 신발에 방울을 달아서 신기도 하였는데 이를 영리라 한다.

착용특징

가사에 장삼을 착용하고, 석장을 짚고 서 있다.

가사는 장삼 위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내려 걸쳐 입는다.

장삼의 여밈은 오른쪽 여밈이며 깃은 곧은 직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