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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유복식고려시대 고법리 박익묘의 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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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고법리 박익묘의 시종

구성점

관련자료

고려시대 고법리 박익묘의 시녀
고려시대 삼재도회의 철릭을 입은 평민 남자
고려시대 둔마리고분의 평민 여자

설명

경남 밀양시 청도면 고법리 박익(朴翊)의 묘에서 발견된 벽화에는 고려말기를 살았던 남녀 인물들이 비교적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4벽의 벽화에 그려진 인물들은 4인 1조를 이루며 서로 대칭적으로 피장자를 향해 이동하고 있는데, 그들은 빈 용기를 손에 들고 있다. 그 중 고려시대 남자 시종으로 추측되는 인물의 복식을 살펴보면, 그는 단령포를 착용하고 있고, 머리에 쓴 관모의 형태는 벽면의 마멸로 인해 형태 구분이 불가하다.
단, 서긍의 <고려도경> 농상(農商)조에 보면 "농상의 백성은 농민은 빈부할 것이, 장사치는 원근할 것 없이 다 백저포(白紵袍)를 만들고 오건(烏巾)에 네 가닥 띠를 하는데, 다만 베의 곱고 거친 것으로 구별한다. 나라의 벼슬아치나 귀인도 물러가 사가에서 생활할 때면 역시 이를 입는다. 다만 두건의 띠를 두 가닥으로 하는 것으로 구별하고, 간혹 거리를 걸어갈 때에도 향리나 백성이 이 두 가닥 띠를 보고는 피한다." 하여 흑색 복두형의 관모가 널리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한편 벽화 내 그 밖의 다른 남자들이 착용하고 있는 관모를 살펴보았을 때, 몽고풍 발립과 유사한 형태의 관모를 착용한 사례도 있다.

인물이 착용하고 있는 단령은 깃이 둥근 포로서, 소매통은 좁고 전체 포의 길이는 발목의 조금 위쪽에 이른다. 포 아래로 드러난 신발은 삼재도회에서 소개하고 있는 고려의 서민남자가 신고 있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박익 묘 벽화에 등장하는 남자 시종의 복장은 이후 조선시대의 서민남자가 착용했던 의복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포 아래로 보이는 장화, 저고리의 단령, 몸매보다 큰 의복, 몽고풍 모자(발립,鉢笠) 등이 눈에 띈다.

묘의 주인, 송은 박익은 고려 공민왕때 문과에 급제, 사재소감을 역임했으며 조선 태조가 관직을 주려고 다섯 번이나 불렀으나 응하지 않은 고려 팔은(八隱)중의 한 사람이다.

참고문헌

한국전통복식2천년(1995) / 국립대구박물관
한국복식사(2001) / 안명숙,김용서
한국생활사박물관07(2002) / 한국생활사박물관편찬위원회
(국역)고려도경(1977) / 서긍

색측정값
RGBLa*b*NCS
238/167/9272/14/312030-Y30R
애니메이션 표현 Tip

1. 상류계층에서 착용하는 단령포에 비해 부피가 작고 주름이 적다.
2. 머리에 쓴 복두 대신 발립형 관모를 착용하여 다양한 복식을 구사할 수 있다.
3. 포의 옆선에 트임이 있어 단령의 폭이 좁아도 활동하기에 적합하다.

착용특징

머리에는 복두형의 관모를 착용하고 양 옆이 트인 단령포를 착용하고 있다.

단령포의 목둘레선을 통해 포 안에 내의를 착용한 모습이 보인다.

단령은 길고 둥글게 만든 옷깃으로 목을 둥글게 감싼 후 매듭 단추로 오른쪽 어깨에서 여미어 입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