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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유복식고려시대 문희귀환도의 자의를 입은 귀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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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문희귀환도의 자의를 입은 귀부인

구성점

자의

관련자료

고려시대 문희귀환도의 귀부인
고려시대 관경변상도의 귀부인1
고려시대 수월관음도의 귀부인1
고려시대 수월관음도의 귀부인2
고려시대 관경변상도의 귀부인2

설명

고려시대 포의 양식을 보여주는 14세기의 복식유물로서 온양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1302년 아미타불 복장이 있다. 아미타불 복장복식은 발원문의 연대가 1302년으로 되어 있으나 입었던 흔적이 있었으므로 이보다 앞선 것으로 추정된다.
의복으로는 3점이 나왔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오래된 고려말의 자료라고 할 수 있으며, 각각 자의(紫衣), 중의(中衣), 상의(上衣)로 이름을 붙였다. 옷깃 안쪽으로는 착장자에 대한 표시가 묵서로 새겨져 있어 추정이 가능하다.

이때는 몽고복식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문희귀환도의 여인도상에 나오는 포를 보면 중거형의 여밈이며, 옷길이의 앞뒤 차이는 자의와 다르나 허리까지 오는 옆트임은 매우 흡사하다. 대는 포백대를 띠고 있다.

부분적이나마 고려시대 여성의 삶을 가족제도 안에서 이해하고자 하면 다음과 같다. 고려시대 일반인의 혼인형태는 서류부가혼(壻留婦家婚)이다. 글자 그대로 사위가 부인의 집에 머무르는 형태를 말하는데, 이를 달리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이라고도 한다. 즉 남자가 혼인 후 낳은 자식이 장성할 때까지 여자의 집에서 거주한다는 뜻이다. 고려 중기 대문장가 이규보도 장인의 제문을 쓰면서 "사위가 되어 밥 한 끼와 물 한 모금을 다 장인에게 의지했다"고 했다. 이런 사실 역시 당시 결혼 후 남자가 여자의 집에서 거주했음을 알려주는 예가 된다.

이런 혼인 형태는 상속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남자가 여자의 집에서 자식이 장성할 때까지 머무를 수 있었던 것은 여자도 경제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최근 국내 연구에 따르면 고려시대에는 노비, 토지 모두 남녀 동일하게 상속받는 남녀균분 상속이 행해졌고, 그를 바탕으로 독립된 가계를 이루기 때문에 자연히 가족 형태도 단혼(單婚) 소가족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하였다.

즉 고려시대의 가족은 부부를 중심으로 3-4명의 자녀를 둔 단혼 소가족 형태로서, 결국 고려시대 재산상속과 혼인 형태가 일부일처제에 기반한 단혼 소가족제도를 유지하게끔 원인이 되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우리옷이천년(2001) / 문화관광부(유희경 외)
한국의복식문화(2000) / 백영자,최해율
한국복식문화사(1998) / 유희경,김문자

색측정값
RGBLa*b*NCS
110/0/035/18/126030-Y80R
80/101/12449/-4/-125020-R90B
246/232/17686/2/171010-Y20R
애니메이션 표현 Tip

1. 위로 올린 머리는 숱이 풍성하다.
2. 소매의 통이 비교적 좁으면서 그 길이가 매우 길어 손끝을 가리기 쉽다.
3. 자의는 옆으로 깊은 트임이 있어 인물의 움직임에 따라 내의가 일부분 보여진다.

착용특징

상의와 치마를 입은 위에 중의를 입고 자의를 맨 위에 착용하였다.

자의를 고정하는 허리의 대는 앞쪽에서 묶음을 두어 늘어뜨렸다.

자의는 곧은 깃을 오른쪽으로 여며 입고 앞길이 많이 겹쳐지게 착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