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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유복식고려시대 수월관음도의 귀부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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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수월관음도의 귀부인2

구성점

포 치마

관련자료

고려시대 귀부인_조반부인
고려시대 귀부인_하연부인
고려시대 관경서분변상도의 귀부인
고려시대 관경변상도의 귀부인1
고려시대 수월관음도의 귀부인1

설명

일본 대덕사 소장의 고려불화 수월관음도 공양자상 좌측에서는 두록색 포를 입고, 포 위로 홍색 속대를 찬 여인의 뒷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림에 나타난 귀부녀의 머리 장식은 고려시대 흔히 하던 수발의 형식으로, 하연부인의 두식 또한 유사하며 아울러 화려한 뒤꽂이 장식도 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남편과 아내의 부부관계에 있어 상대적으로 평등했던 만큼 이혼도 다른 시대에 비해 잦았던 것으로 보여진다. 송나라 휘종이 고려에 국신사(國信使)를 보낼 때 수행한 서긍이 송도에서 보고 들은 것을 그림을 곁들여서 기록한 <고려도경>에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비난한 바 있다. "고려인은 쉽게 결혼하고 쉽게 헤어져 그 예법을 알지 못하니, 가소로울 뿐이다."

고려에서는 여성의 재혼을 금지하고 수절을 강요하지 않았으며, 더욱 놀라운 것은 왕의 부인 가운데서도 재혼녀가 있었다는 점이다. 고려 충렬왕의 비였던 숙창원비 김씨라든가 고려 충숙왕비인 수비 권씨의 경우도 전남편이 한미한 사람이라고 해서 강제로 이혼한 뒤에 왕과 재혼했으며 순비 허씨도 원래 평양후 현에게 시집가서 3남4녀를 낳았는데 남편과 사별하고 다시 재혼해 충선왕의 비가 되었다.

한편 고려 충렬왕때 재상 박유가 "고려는 음양오행의 원리상 남자가 적고 여자가 많아서 여자의 머리가 희어지도록 결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불평을 고하며, 처와 첩을 두되 관품에 따라서 수를 줄여 서인들은 처 한 명, 첩 한 명씩만 두도록 하면 인구를 증가시키면서 백성을 위하는 도리가 될 것이라고 상소문을 올렸던 일이 있었는데, 이는 당시 여성들의 반대로 시행되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한국복식사(1998) / 유송옥
한국복식사(2001) / 안명숙,김용서
우리옷이천년(2001) / 문화관광부(유희경외)
한국복식문화사(1998) / 유희경,김문자
한국의 미7-고려불화(1994) / 중앙일보사
(국역)고려도경(1977) / 서긍

색측정값
RGBLa*b*NCS
90/89/5648/-4/86010-G50Y
244/124/7665/25/282040-Y60R
애니메이션 표현 Tip

1. 머리는 숱이 풍부하고 금속장식을 가미하여 화려하게 표현한다.
2. 포의 바탕에 금직문양이 잔잔하게 분포하여 고급직물의 느낌을 준다.
3. 착용하고 있는 치마와 포의 길이가 매우 길어 인물의 전체 움직임이 정적으로 보이나 허리에서 늘어뜨린 매듭 등 부분적 움직임이 있다.

착용특징

치마와 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포를 착용하였으며 허리에는 띠를 매었다.

허리의 띠는 돌려매어서 측면 뒤로 늘어뜨렸는데 중간부분에 장식매듭을 지어주었다.

포는 곧은 깃을 오른쪽으로 여며 착용하였으며 길이는 치마보다 약간 짧아 밑으로 치마의 단이 보이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