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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유복식고려시대 심의를 입은 유학자_이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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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심의를 입은 유학자_이제현

구성점

관모 심의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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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유학자

설명

귀곡사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 성리학의 기초 확립자, 이제현(李齊賢,1287-1367) 영정은 주자학과 함께 원에서 들어온 유학자들의 법복, 즉 심의 착용 모습을 보여준다.
인물이 착용하고 있는 심의의 모습은 흰색의 깃 위에 검은색의 연(緣)을 둘러 깃이 조금 노출되었고 상(裳) 오른쪽에는 여밈 자락이 보인다. 대를 묶은 허리 부분은 소매에 가리어져 보이지 않지만 매듭을 묶은 양 귀와 늘어뜨린 신(紳)에는 검은색 연(緣)이 둘러져 있고 세조는 보이지 않는다.

이제현은 호가 익재(益齎,實齎) 역옹으로, 고려 충렬왕13년(1287년)에 태어나 공민왕16년(1367)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공민왕때 최고위직인 문하시중에까지 오른 문신이면서, 정주학을 정립한 한학자, 문장가, 시인, 서화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며, 저서로서 <효행록>, <익재집>, <역옹패설>, <익재난고> 등이 있다.

고려시대에 있어 유학은 불교와 함께 고려인의 정신세계를 이끌고 간 쌍두마차였다. 불교가 다른 신앙과 사상을 끌어안아 통합하고 서로의 차이를 없애는 방향으로 움직였다면, 유학은 다른 사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분리하고 차이를 드러내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애초에 유학은 "불교는 마음을 다스리는 근본이고 유학은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라 하여 불교와 공존하기 위해 차이를 강조했었으나, 불교와 유학이 기득권층의 사상으로 공존이 어려워지자 이 한계를 벗어나고자 새로운 철학적 유학인 성리학이 대두되었다.

성리학은 반종교적 합리주의인 유학의 본성을 끝까지 밀어 붙여 불교와의 차이를 선명하게 하는데 그치지 않고 불교를 없애버리려는 시도로 나아갔다. 즉, 이제현의 성리학은 사회 개혁의 이념으로 자리잡게 되었으며 이후 정도전에 의해 성리학적 불교배척론이 체계화되었다.

참고문헌

우리옷이천년(2001) / 문화관광부(유희경 외)
심의(1998) / 정혜경
두산세계대백과사전 / 두산동아

색측정값
RGBLa*b*NCS
26/26/2630/0/08500-N
255/252/22993/1/40502-Y50R
54/50/5541/-2/-27005-B20G
애니메이션 표현 Tip

1. 흑색의 관모는 정수리 윗부분이 잘린 듯한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2. 심의는 깃과 수구, 도련에 모두 검은 선을 둘러준다.
3. 절제된 흑백의 색상과 과장되지 않은 인체의 선이 학자로서의 담백한 멋을 풍기게 한다.

착용특징

머리에 흑색 관모를 쓰고 심의를 착용하였다.

심의는 곧은 깃을 오른쪽으로 여며 입었으며 깃이 많이 겹쳐지게 입는다.

심의를 고정하는 허리의 대는 앞쪽으로 묶음을 두어 늘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