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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유복식고려시대 질손을 입고 외출하는 귀족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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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질손을 입고 외출하는 귀족 남자

구성점

질손

관련자료

고려시대 발립을 쓴 관료_이조년
고려시대 일상복을 입은 귀족 남자_이포

설명

고려 제 31대 공민왕(1330-1374)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천산대렵도(天山大獵圖)에서 말을 탄 귀족 남자가 개체변발을 하고 질손을 착용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개체변발이란 머리 변두리를 깎고 정수리 부분의 머리털만 남겨 땋아 늘인 것으로서, 고려후기에 몽고풍의 영향을 받아 나타나게 되었다. 충렬왕은 세자로 있을 당시 원나라에 다녀올 때 변발호복으로 입국하여, 즉위 후에는 영을 내리어 모두 몽고의 의복과 개체변발을 할 것을 명하였으나, 일반 서민이 모두 따른 것은 아니고, 지배계급인 관료층과 출세를 희구하는 일부 지식층에서만 호응하였다 한다.

개체변발은 중간에 머리를 남기며 겁구아(怯仇兒)라고도 하였는데, 몽골어로는 '허헐'(Kekul)이라고 한다. 충렬왕 4년(1277) 2월에는 신하에게 강요하여 개체령을 발표하고 있으니 그 때까지 백성들은 개체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몽골은 앞을 치는 데 비하여 국말까지의 변발은 앞머리를 치지 않았다. 다만 성인의 상투 밑을 치는 '백호친다'는 어휘가 있기는 하지만 이는 불교적 어휘에서 온 말이다. 그러므로 개체의 풍속은 변발의 풍습으로 남아있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본래의 모습에서는 멀어진 것으로 보인다.

<거가잡복고>에 "공민왕 원년에 변발호복은 우리 선조의 제도가 아니라는 신하의 말에 변발을 풀었다."고 하였으며, <고려사>에는 "원(元)을 섬긴 이래 개체변발하여 호복을 입은 지 백년이 가까이 오다가 이때부터 의관문물이 완연히 다시 새로워졌다."고 하였다.

충렬왕의 개체변발은 1272년에 시작되어 1389년까지 계속된 것으로 길어야 100년정도 계속된 것이고, 궁에 사는 왕족과 신하들이었고 백성의 일부였을 것이다. 그 후 본래의 고유한 수발양식인 상투와 얹은머리로 되돌아갔다.

고려시대에는 귀족층과 관련하여 '얼음 배급'이라는 흥미로운 제도가 있었다. 전근대사회에서 국가가 신료나 신민에게 얼음을 주는 것은 나름의 철학관이나 정치적 의미가 있었다. 고려시대는 귀족권의 견제나 호족 연합을 위해, 조선시대는 여름날 창성한 양기를 얼음을 통해 절제한다는 의미로서 나름의 정치적 철학적 의미가 있었다.

<고려사>를 보면 제 3대 정종시절에 얼음 배급시기를 음력 4월 입하 날로 정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저장과 배급의 원칙을 보면 해가 북륙(음력12월)때 얼음을 저장하고 서륙(음력4월경)에 있을 때 배급했다고 한다. 이처럼 얼음 배급은 단순히 여름을 시원하게 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고려시대의 역법과 길흉화복을 점치게 하는 중요한 제의 수단이었기에 새끼 염소를 바쳐 제사를 하고 나서야 빙고의 문을 열었으며, 사용 기간도 춘분에서 입추까지로 했다.

정종2년(1036년) 6월에는 문하시중(오늘날의 국무총리)으로 휴직한 유방 등 17인에게 입추까지 매 10일에 1회씩 얼음을 내려주라는 조칙이 있었다. 이때부터 휴직 중인 관리에게도 얼음을 배급했다. 고려 문종 2년(1049)에 얼음 배급에 관한 법제가 완성되었는데 "해마다 6월부터 입추까지 얼음을 나누되 퇴직한 여러 관료들에게는 3일에 한번씩 하고 복야, 상서(尙書), 경(卿), 감(監), 대장군(大將軍) 이상에는 7일에 한번씩" 하라고 했다.

한편 얼음의 지급시기는 고려 정종때는 4월, 문종때는 6월이었다. 지급시기를 보면 얼음이야 더울 때 먹는 것이지만 왕권이 강할수록 얼음지급이 늦어지고 귀족권이 강화되면 약간 앞당겨졌다. 그만큼 얼음 배급은 백성들의 고된 부담이었기에 국가로서는 시기를 늦추려 했고, 혜택받는 귀족들은 이를 앞당기려고 애썼다.

문종 이후 <고려사>에는 귀족에게 얼음을 나눠주었다는 기사가 없다. 귀족들도 얼음을 채취하고 저장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무신 집권기에 들어서면 이제는 권문귀족이 얼음을 사적으로 채취 저장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즉 <고려사> 반역열전 최이 항목을 보면 최이가 서산에 사사로이 얼음을 저장하려고 백성을 징발했는데, 백성들이 매우 괴로워했다는 기록이 있다.

참고문헌

한국복식사(1998) / 유송옥
한국의복식문화(2000) / 백영자,최해율
우리가 정말 몰랐던 고려이야기(2001) / 김인호

색측정값
RGBLa*b*NCS
189/90/550/22/403560-Y30R
애니메이션 표현 Tip

1. 머리는 변두리를 깎고 정수리 부분의 머리털만 남겨 땋아 늘인 것이다.
2. 질손의 표면은 모피로 표현하였다.
3. 질손 위 허리에 두른 대는 가죽 재질이다.

착용특징

머리는 개체변발을 하고 질손을 입은 채 활을 들고 서 있다.

질손은 오른쪽으로 깊숙하게 겹쳐 여며 착용하였다.

바지는 목이 긴 화 속에 부리를 넣어 착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