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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유복식고려시대 발립을 쓴 관료_이조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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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발립을 쓴 관료_이조년

구성점

발립 포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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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고려말의 명신인 이조년(李兆年,1269-1343)의 초상을 보면 원나라 복속기에 복식에 미친 몽고풍의 영향이 잘 나타나 있다. 이조년의 초상은 조선조에 들어와 개묘와 중묘를 하였다고 하는데 홍색포는 넓은 깃 가운데에 한 줄의 바느질선이 있는 긴 것으로 여밈을 깊게 하였고 양옆이 무릎 높이 아래로 트여 있으며 허리에는 가는 홍색띠를 띠었다. 포 속에 착용한 옷으로는 청색이 보이며, 머리에는 역시 몽고식 발립을 쓰고 주를 늘이고 있다.
본관은 성주이며, 호는 매운당, 백화헌인 고려시대 문신 이조년은 1294년(충렬왕20년) 진사로 문과에 급제, 안남서기가 되고 예빈내급사를 거쳐 지합주사, 비서랑을 역임하였다. 1306년 비서승 때 왕유소 등이 충렬왕 부자를 이간시키고 서흥후(瑞興侯) 전(琠)을 충렬왕의 후계로 삼으려 하자 어느 파에도 가담하지 않고 최진과 충렬왕을 보필하였으나 이에 연루되어 귀양갔다. 그 후 풀려나와 13년간 고향에서 은거했고, 심양왕(瀋陽王) 고(暠)의 왕위찬탈 음모를 원나라에 상소하였다.

1330년 충숙왕 귀국 후 감찰장령이 되고 전리총랑을 거쳐 군부판서에 승진, 수차 원나라에 다녀왔다. 1340년 충혜왕이 복위하자 정당문학에 오르고 예문관대제학이 되어 성산군에 봉해졌다. 왕의 음탕함을 간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이듬해 사직, 후에 성근익찬경절공신이 되었다. 시문에 뛰어났으며, <다정가:이화에 월백하고> 시조 l수가 전한다.

서긍의 <고려도경>을 보면 "고려에서는 사민(四民)가운데 선비를 가장 귀하게 여긴다" 하였는데 여기서 선비란 곧 관료층을 의미한다. 관료는 당대 최고의 신분층이며 관직에 오른다는 것은 곧 경제적으로 생활이 보장된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고려와 같은 신분제 사회에서는 지배층인 그들에게는 부와 권력, 그리고 명예가 뒤따르게 마련이었다. 이렇듯 관료가 되는 고려시대 과거시험은 제술업과 명경업이다. 흔히 이를 두 가지 큰 시험이라 해서 양대업이라고도 한다. 제술업은 글자 그대로 문장을 잘 짓는 자를 뽑는 시험으로 조선시대 진사시와 같은 형태이고, 명경업은 경서에 밝은 사람을 뽑는 시험이다. 이 가운데 제술업이 더 중시되었다. 그리고 조선시대 잡과시험과 같이 기술관을 뽑는 시험을 고려시대에는 잡업이라 했다. 잡업에는 법률지식을 시험치는 명법업, 회계나 재정 관계에 밝은 인재를 선발하는 명산업, 의술에 밝은 자를 뽑는 명의업, 음양풍수의 전문가를 뽑는 지리업 등이 있다.

한편 조선의 생원, 진사시와 같은 예비시험을 고려시대에는 지방의 향시라 하였는데, 이를 달리 계손시라고도 한다. 그리고 향시에서 합격한 향공과 국자감 출신자가 다시 조선시대 성균관에 해당하는 국자감에서 치르는 2차시험을 국자감시 혹은 사마시라고 한다. 그 다음 마지막으로 제술업과 명경업으로 인재를 뽑는 최종시험을 예부시 혹은 진사시라고 한다. 마지막 시험을 예부가 주관해서 치르기 때문에 예부시라고 한 것인데 이 예부시를 통과해야 비로소 관료가 될 수 있었다. 진사시는 국자감시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고려시대에도 과거 합격자에게 합격증서로 홍패를 주어 제술업이나 잡과 합격자 모두 홍패를 받았다. 그러나 조선시대와 같이 예비시 합격자에게 백패를 주지는 않았고, 다만 고려 국왕이 직접 주관한 시험인 친시에 합격한 사람에게 홍패를 주기도 했다. 홍패에는 응시자의 성명과 지위, 급제 등급, 당시 과거시험을 주관한 고시관인 지공거 등의 명단이 실려 있었다.

한편 고려시대에도 급제 시의 성적이 관료 진출과 승진에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무인정권기의 문장가 이규보는 최종시험인 예부시의 성적이 나빠 합격을 포기하고 다시 응시하려고 했으나, 부친이 전례에 없는 일이라고 만류하는 바람에 다시 응시하지 못했다고 한다. 고려시대 과거 성적은 제술업과 명경업의 경우 갑과, 을과, 병과, 동진사의 4단계로 나누었으나 나중에 갑과는 폐지되고 을과 3인, 병과 7인, 동진사 23인 등으로 나누었다. 한편 잡과 합격자의 등급은 1과, 2과, 3과 등으로 구분했다. 조선시대와 달리 고려시대에는 평균 2년에 한번씩 과거를 치루었다.

참고문헌

한국복식문화사(1998) / 유희경,김문자
한국복식사(1999) / 김영숙,김명숙
두산세계대백과사전 / 두산동아

색측정값
RGBLa*b*NCS
26/0/030/0/28502-Y
235/62/055/36/302060-Y70R
239/88/5259/32/272050-Y70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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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표현 Tip

1. 발립은 겉면은 어두운 흑색이고 안은 밝은 홍색으로 되어있어 대비를 이루고 있다.
2. 발립과 연결된 끈으로서 턱 아래 드리워진 것은 장식용 구슬의 재질이다.
3. 넉넉한 직령포의 직물이 매우 부드러워 전체적으로 흐르는듯 주름이 잡혀있다.

착용특징

머리에는 발립을 쓰고 길이가 긴 곧은 깃의 직령포를 착용하고 있다.

포의 여밈을 깊게 하였고 허리에는 홍색의 대를 둘러 고정하였다.

직령포의 목둘레 선 혹은 옆트임을 통해 포 안에 착용한 푸른색 내의가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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