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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유복식고려시대 포를 입은 관료_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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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포를 입은 관료_길재

구성점

관모 포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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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관복을 입은 관료_ 이색
고려시대 관복을 입은 관료_정몽주

설명

고려 말 조선 초의 생활상 부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그림인 길재(吉再,1353-1419) 초상은 일반 사대부상으로서, 대개는 의례적 기념용으로 쓰는데 조선시대에 와서 이묘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손을 마주 잡은 채 공수(拱手) 자세로 앉아있는 길재의 초상 속에 표현된 복장은 머리에 높이 솟은 관모를 착용하고 있으며, 폭이 넓은 포를 오른쪽으로 여미어 착용하고 있다. 색은 정확히 표현되어 있지 않으나, 포의 길색은 소색에 가까울 것으로 추정되며, 깃둘레가 짙은 색으로 선이 둘러져 있으며, 동정이 달려 있다. 허리 부분에 짙은 색의 대를 둘러 고정하였다.
길재는 본관이 해평이며, 호는 야은, 구미에서 출생한 성리학자이다. 1363년 냉산 도리사에서 처음 글을 배웠으며, 1370년 박분(朴賁)에게 <논어>, <맹자>를 배우면서 성리학을 접하였다. 관료로 있던 아버지를 만나러 개경에 갔다가 이색, 정몽주, 권근 등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1374년 생원시에, 1383년(우왕9년) 에 합격하고, 그해 중랑장 신면(申勉)의 딸과 결혼하였다.

1386년 진사시에 합격, 청주목 사록에 임명되나 부임하지 않았고, 다음해 성균학정이 되었다가, 1388년에 순유박사를 거쳐 성균박사로 승진하였다. 1389년(창왕1년) 문하주서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고려의 쇠망을 짐작하여 늙은 어머니에 대한 봉양을 구실로 사직하였으며, 고향으로 가는 길에 장단에 있던 이색을 만나기도 하였다. 1390년 계림부(鷄林府)의 교수가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으며, 우왕의 죽음을 듣고 마음으로 3년상을 행하였다.

조선이 건국된 뒤 1400년(정종2년)에 이방원이 태상박사에 임명하였으나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뜻을 말하며 거절하였다. 1402년(태종2년)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불교식 장례법을 따르지 않고 성리학적 가례(家禮)를 따랐다. 세종이 즉위한 뒤 길재의 절의를 기리는 뜻에 그 자손을 서용하려 하자, 자신이 고려에 충성한 것처럼 자손들은 조선에 충성해야 할 것이라며 자손들의 관직 진출을 인정해주었다.

어머니에 대한 효도가 지극하며 세상의 영달에 뜻을 두지 않고 성리학을 연구하였기 때문에 그를 본받고 가르침을 얻으려는 학자가 줄을 이었으며, 김숙자를 비롯하여 김종직,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등이 학맥을 이었다. 문집에 <야은집>, <야은속집> 등이 있다.

참고문헌

한국복식문화사(1998) / 유희경,김문자
두산세계대백과사전 / 두산동아

색측정값
RGBLa*b*NCS
51/16/333/3/58005-Y50R
255/252/22993/1/40502-Y50R
애니메이션 표현 Tip

1. 흑색 관모는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원통형에 가까운 모양으로 고정되어 있다.
2. 깃 부분은 진한 색으로 덧대었고 동정을 달았다.
3. 포의 바탕감이 매우 유연하여 소매, 허리 등에 부드러운 주름이 형성된다.

착용특징

정수리 위로 높이 솟는 관모를 머리에 쓰고 포를 착용하였다.

포는 곧은 깃을 오른쪽으로 여며 착용하였다.

포를 고정하는 허리의 대는 앞으로 묶어 늘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