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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유복식고려시대 평정건을 쓴 관료_안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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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평정건을 쓴 관료_안향

구성점

평정건 포

관련자료

고려시대 포를 입은 관료_길재
고려시대 심의를 입은 유학자_이제현
고려시대 발립을 쓴 관료_이조년
고려시대 일상복을 입은 귀족 남자_이포

설명

경북 풍기군 소수서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국보 111호, 고려시대 문신 안향의 초상화는 홍색 직령포를 착용하고 평정건을 쓴 안향의 모습을 담고있다. 안향이 죽은 뒤인 1318년(충숙왕5년)에 충숙왕은 원나라 화가에게 그의 초상을 그리게 하였는데, 현재 전해지고 있는 그의 화상은 이것을 모사한 것을 조선 명종 때 다시 고쳐 그린 것이다.
안향은 주자학 도입과 보급에 공이 큰 인물로서 원종 때에 직한림원으로서 내시를 겸하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려시대의 내시는 남성이 제거된 환관과는 구분되어, 오히려 대개가 귀족 자제로서 용모가 단정하거나 유학적 지식을 갖추었기 때문에 선발된 인재에 속한다. 우리나라 사립대학의 창시자인 최충의 손자 최사추, 고려 중기 최고의 지식인인 김부식의 아들 김동중, 최초 주자학을 도입한 안향 등 모두 이러한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내시로 선발되었던 것이다. 내시는 여러 시종들과 함께 왕의 행차에 동행한 것은 물론 왕명의 초안을 작성하거나 국가 기무를 관장하고 때로는 유교경전을 강의하기도 하였다.

고려시대에 내시가 언제 어떠한 직급으로 설치되었는지에 관한 명확한 기록은 없다. 단, 918년(태조1년) 오늘날 부총리급에 해당하는 광평시랑 직예를 내시서기로 삼았다는 기록에서 당시 내시의 위상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내시의 선발기준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기준은 문종 때에야 확인할 수 있는데, 문종은 재능과 공로가 있는 사람들 가운데 용모가 수려한 사람 20명 정도를 내시로 뽑아 자신을 시종하게 하였으며 그 수고의 대가로 별사미(別賜米)를 주었다. 이러한 원칙은 그 후 인종때까지 준수되다가 의종 때에 이르러 귀족 자제로 구성된 좌번내시와 유신(儒臣)으로 구성된 우번내시의 이원적 조직으로 확대되었다.

초상화 내에서 착용하고 있는 옷은 몽고의 영향을 받은 남자 평상복에 해당한다. 홍색의 포 형태에 깃은 원나라 복식과 같이 깃중심선이 한 줄 더 있고, 여밈은 겨드랑이 밑까지 깊게 겹쳐져 있다. 보이지는 않으나 깃 끝에 매듭 단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며 띠도 홍색으로 띠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포의 양 옆에 트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한국복식사(1998) / 유송옥
한국복식문화사(1998) / 유희경,김문자
한국생활사박물관08(2002) / 한국생활사박물관편찬위원회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1999) / 한국역사연구회

색측정값
RGBLa*b*NCS
0/0/025/0/09000-N
240/63/051/40/412075-Y60R
애니메이션 표현 Tip

1. 평정건은 윗부분을 평평하게 한 두건으로 검정 무명을 두겹으로 하고 심을 넣어 빳빳하게 만든다.
2. 포의 색깔은 홍색을 띠며 허리의 대 역시 동일한 홍색으로 둘렀다.
3. 깃중심선이 한 줄 더 있어 원나라 복식의 영향을 보여준다.

착용특징

머리에 흑색 평정건을 쓰고 곧은 깃의 홍색포를 착용하고 있다.

포의 여밈은 겨드랑이 밑까지 깊게 겹쳐져 있으며 우임직령의 여밈이다.

포 안에 또 다른 내의를 목둘레에 밭게 착용한 것이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