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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유복식고려시대 관복을 입은 관료_정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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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관복을 입은 관료_정몽주

구성점

사모 단령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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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고려 공신 정몽주(鄭夢周, 1337-1392)의 초상화에서 사모(紗帽)를 쓰고 단령(團領)를 입은 고려 관료의 상복(常服) 착용 사례를 볼 수 있다. 흑색 사모의 2단 모부가 둥글게 표현되어 있고, 후각 역시 그 외곽이 모나지 않고 둥근 모양이다. 사모의 후각에 보여지는 반투명 재질감과 문양까지도 정밀하게 표현된 것이 특징적이다.
인물은 넉넉한 품의 단령포를 착용하고 있는데, 단령이라는 명칭은 깃이 곧은 직령에 비하여 포의 옷깃이 둥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포의 소매가 넓고 길이는 발뒤꿈치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며 허리 선 위로 둘러진 대는 화려한 금빛 장식이 고위 관료로서의 품위를 돋보이게 한다.

상복(常服)의 기본인 사모와 단령 착용은 고려 우왕13년(1387년) 사신으로 갔던 설장수가 명나라 왕이 하사한 사모와 단령을 입고 돌아오자 정몽주의 건의에 의해 시행된 것이다. 1품에서 9품까지 사모, 단령을 착용하였고 대로 품계의 상하를 구별하였으며, 이 우왕대의 개정 관복제도는 조선시대 관복 중 상복이 된 사모, 단령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정몽주는 본관이 연일이며, 호는 포은(圃隱)으로서 목은 이색, 야은 길재와 더불어 고려시대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불린다. 영천에서 출생하여 공민왕6년 감시에 합격하고 1360년 문과에 장원을 하였다. 의창(義倉)을 세워 빈민을 구제하고 유학을 보급하였으며, 성리학에 밝았다. <주자가례>를 따라 사회윤리와 도덕의 합리화를 기하며 개성에 5부 학당과 지방에 향교를 세워 교육진흥을 꾀하는 한편 <대명률>을 참작, <신율>을 간행하여 법질서의 확립을 기하고 외교와 군사면에도 깊이 관여하여 국운을 바로잡으려 했다. 시문에도 뛰어나 시조 <단심가> 외에 많은 한시가 전해지며 서화에도 뛰어났다. 문집으로 <포은집>을 남겼다.

참고문헌

한국복식사(1998) / 유송옥
한국복식문화사(1998) / 유희경,김문자
한국생활사박물관08(2002) / 한국생활사박물관편찬위원회

색측정값
RGBLa*b*NCS
26/26/2630/0/08500-N
79/72/7453/-1/-25502-B
229/206/15579/4/152010-Y30R
애니메이션 표현 Tip

1. 사모는 둥근 후각이 아래로 쳐져 있으며 반투명 재질로 보인다.
2. 인물이 착용하고 있는 넉넉한 품의 단령포, 화려한 장식의 금빛 대 등이 고위 관료로서의 품위를 돋보이게 한다.
3. 상복은 1-9품까지 모두 사모, 단령이고 대로서 품계의 상하를 구별하였다.

착용특징

머리에 사모를 쓰고 단령을 입었으며, 허리에 대를 매고 화를 신었다.

단령포의 목둘레선을 통해 포 안에 내의를 착용한 모습이 보인다.

단령은 길고 둥글게 만든 옷깃으로 목을 둥글게 감싼 후 매듭 단추로 오른쪽 어깨에서 여미어 입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