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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유복식고려시대 관복을 입은 관료_ 이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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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관복을 입은 관료_ 이색

구성점

사모 단령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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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충남 예산군 누산영당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려말의 문신이자 학자, 이색(李穡, 1328-1396)의 영정에는 이색이 관료로서 집무할 때 착용했던 상복(常服), 즉 사모와 단령을 갖추고 허리에 대를 매며 화를 신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두 손을 마주잡은 공수(拱手) 자세로 앉아있는 이색이 착용한 단령은 품이 넉넉하며 인체의 선이 둥글고 완만하게 표현되어 관료로서의 위엄이 보인다.
상복의 기본인 사모와 단령 착용은 고려 우왕13년(1387년) 사신으로 갔던 설장수가 명나라 왕이 하사한 사모와 단령을 입고 돌아오자 정몽주의 건의에 의해 시행된 것이다. 1품에서 9품까지 사모, 단령을 착용하였고 대로 품계의 상하를 구별하였으며, 이는 조선시대에까지 걸쳐 사용되었다.

이색은 본관은 한산, 호는 목은이다. 이제현의 문하생으로서 고려시대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1341년 진사가 되고, 1348년(충목왕4년) 원나라에 가서 국자감의 생원이 되어 성리학을 연구했다. 부친상(父親喪)으로 귀국한 뒤, 공민왕대에 전제(田制)개혁, 국방강화, 교육진흥, 불교억제 등 당면정책을 왕에게 건의했다. 1353년 향시와 정동행성의 향시에 장원 급제하였고 1354년 서장관으로 원나라에 가서 회시에 장원, 전시에 차석으로 급제, 국사원편수관 등을 지내다가 귀국하였다. 1367년 대사성이 되자 성균관의 학칙을 새로 제정하고 김구용, 정몽주, 이숭인 등과 강론, 성리학 발전에 공헌했다. 이성계의 득세 이후 장단, 함창 등지에 유배되었다가 조선 개국 후 인재를 아낀 태조가 1395년 한산백(韓山伯)에 책봉했으나 사양, 이듬해 여강으로 가던 중 죽었다. 문하에 권근, 김종직, 변계량 등을 배출, 학문과 정치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저서에 <목은시고>, <목은문고>가 있다.

고려시대의 관료층이 본격적으로 확립된 것은 성종대 내사문하성과 상서도성 제도가 성립되면서부터이다. 이것이 문종대에 확립된 2성체제, 곧 중서문하성과 6부로 구성된 상서성 체제의 골격이 되며, 관직제도가 확립되면서 고려시대 관료층의 범위와 정원이 정해지게 되었다.

전통사회에서는 관료나 아전들의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 상피(相避)라는 규례가 있었다. 이 상피는 관료체계의 원활한 운영과 권력의 집중, 전횡을 막기 위해 일정 범위 내의 친족 간에는 같은 관청 또는 통속관계에 있는 관청에서 근무할 수 없게 하거나 연고가 있는 관직에 제수할 수 없게 한 제도였다.

이 제도는 이미 골품사회에서 관료제가 정착하기 시작한 이래, 고려시대에 들어서면서 성문화되었다. 이미 1092년, 선종9년에 고려의 예법인 오복제를 기초로 하고, 여기에 송나라의 제도를 참작해 처음 실시했다.

참고문헌

우리옷이천년(2001) / 문화관광부(유희경 외)
한국복식문화사(1998) / 유희경,김문자
한국복식사(1998) / 유송옥

색측정값
RGBLa*b*NCS
51/24/734/2/58005-Y20R
228/165/12972/12/162020-Y60R
애니메이션 표현 Tip

1. 사모는 둥근 후각이 아래로 쳐져 있으며 반투명 재질로 보인다.
2. 단령은 품이 넉넉하며 인체의 선이 둥글고 완만하게 표현되어 관료로서의 위엄이 보인다.
3. 상복은 1-9품까지 모두 사모, 단령이고 대로서 품계의 상하를 구별하였다.

착용특징

머리에 사모를 쓰고 단령을 입었으며, 허리에 대를 매고 화를 신었다.

단령포의 옆트임을 통해 포 안에 내의를 착용한 모습이 보인다.

단령은 길고 둥글게 만든 옷깃으로 목을 둥글게 감싼 후 매듭 단추로 오른쪽 어깨에서 여미어 입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