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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유복식고려시대 수락암동의 조복을 입은 관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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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수락암동의 조복을 입은 관료

구성점

관모 포 홀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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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고려 전기 백관 조복(朝服)의 존재 여부는 문헌상 나타나 있지 않으며, 조복이 <고려사>에 비로소 보이는 것은 의종조 <상정고금례>에서이다. 여기에 정지(正至)(원단,동지), 절일(節日), 조하(朝賀), 매삭(每朔) 삼대조하(三大朝賀) 등에 착복한다고만 명시되었을 뿐 이에 대한 자세한 제도는 알 수 없으며, 다만 제복에서 송제를 따랐듯이 송제를 따랐거나 공복으로 통용하였으리라 추측될 뿐이다. 송사에 보면, 조복의 구성은 진현관, 초선관, 해치관 등의 양관류에 비라의, 비라군, 백라중단, 비라폐슬, 백라대대, 백라방심곡령, 혁대, 수, 백말, 조리 등이다.
개성 개풍군 수락암동 제 1호 고분 고려시대 벽화 십이지신상 가운데도 백관 조복의 사례를 찾을 수 있는데, 이 고분의 십이지신상은 문신(文臣)의 인물화이며 다만 머리 위에 십이지의 동물을 표현한 것이다.

벽화에 그려진 인물은 십이지신의 두상이 있는 양관을 쓰고 영과 수구에 선이 둘러진 자황의 단령 대수포를 착용하였으며 포 아래로 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외 대대와 방심곡령의 착용도 보인다.

고려시대 관료는 당대 최고의 신분층이며 관직에 오른다는 것은 곧 경제적으로 생활이 보장된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고려와 같은 신분제 사회에서는 지배층인 그들에게는 부와 권력, 그리고 명예가 뒤따르게 마련이었다.

서긍의 <고려도경>을 보면 "고려에서는 사민(四民)가운데 선비를 가장 귀하게 여긴다" 하였는데 여기서 선비란 곧 관료층을 의미한다. 당시 관료는 중앙, 지방의 현임으로 녹을 받는 관원이 3천여 명이고 실직이 없는 관원으로서 녹은 없이 토지만 받는 사람이 1만4천여 명이라 하였으니, 당시에는 1만7천여 명의 관료층이 있었던 셈이다.

고려의 관료들도 일단 출근해서 업무를 보고 퇴근시간이 되면 집으로 돌아간다. 주로 사시(巳時, 오전9시)에 출근해서 유시(酉時, 오후5시)에 퇴근하는 것이 규정으로 지금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그러한 관직 종사에 뒤따르는 수입의 형태는 크게 달랐다. 당시 관직은 9품으로 차등화되어 있었고 관료들은 각각 등급에 따라 규정된 전시과와 녹봉을 받았다. 전시과는 근무의 대가로 토지를 분급받는 것이며 녹봉은 현물인 미곡으로 받았다.

<고려사>에 의하면 '전시과'는 문무백관에게 등급에 따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전지와 땔나무를 베어낼 수 있는 시지(柴地)를 주는 것으로 이 '전'과 '시'를 합한 것이다.

이 제도는 976년(경종1년)에 처음 제정된 이래 목종 때에 정비되고 다시 문종 때에 완비되었다. 초기에는 인품과 공로에 따라 지급한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목종 때부터는 관직의 등급만으로 분급한 데서 제도적 변화상을 살필 수 있다.

또 하나의 공식적 수입원인 녹봉도 문종 때에 완비되었는데 400석을 받는 1과부터 10석을 받는 47과까지 세분하였다. 녹봉은 정월 7일과 7월 7일, 일년에 두 번 받았다. 관료들이 녹봉을 받기 위해서는 모두 녹패를 받아야 했다. 녹패란 녹봉을 받을 수 있는 증서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관료들이 녹패를 팔기도 하였다. 녹봉은 주로 쌀, 보리 등의 곡물로 지급하였으나, 베나 비단 등을 주기도 하였다. 관료들이 받는 녹봉과 전시과에서 얻어지는 수입은 대략 비슷한 양이었다고 추정되는데, 다만 차이가 있다면 전시과는 원칙적으로 평생을 보장하는데 반하여 녹봉은 현직자에게만 보장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밖에도 관료들은 공로에 대한 포상 등을 이유로 보너스를 받거나 고위관료에 한해 공음전이라는 특혜적 성격의 토지를 지급받아 이러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그들은 신분과 사회적 지위를 충분히 유지할 수 있었다.

참고문헌

한국복식사(1998) / 유송옥
한국복식문화사(1998) / 유희경,김문자
사진과그림으로보는한국의역사(2002) / 역사문제연구소
우리옷이천년(2001) / 문화관광부(유희경외)
한국의복식문화(2000) / 백영자,최해율

색측정값
RGBLa*b*NCS
78/44/1741/2/57005-Y20R
246/232/17686/2/171010-Y20R
223/189/11875/6/252020-Y20R
애니메이션 표현 Tip

1. 전체 실루엣이 어깨에서부터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직물의 재질감이 반영되어 부드러운 세로 주름이 형성되고 있다.
2. 단령의 수구가 매우 넓어서 단령포의 도련에까지 축 늘어져있다.
3. 지면까지 끌리는 치마는 잔주름이 잡혀있다.

착용특징

양관류의 관모와 대수포를 착용하였으며 포 아래로 치마를 입었다.

단령의 가슴 부분에는 대대를 띠고 있고 목둘레에는 방심곡령을 둘렀으며, 손에는 홀을 들고 있다.

대대의 앞부분에는 길게 끈을 늘어뜨려 장식매듭을 지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