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한국의 고유복식고려시대 서곡리묘의 조복을 입은 관료

연관목차보기

고려시대 서곡리묘의 조복을 입은 관료

구성점

관모 포 홀

관련자료

고려시대 수락암동의 조복을 입은 관료
고려시대 지장시왕도의 공복을 입은 관료
고려시대 관복을 입은 관료_ 이색
고려시대 관복을 입은 관료_정몽주
고려시대 공복을 입은 관료_강민첨

설명

고려 전기 백관 조복(朝服)의 존재 여부는 문헌상 나타나 있지 않으며, 조복이 <고려사>에 비로소 보이는 것은 의종조 <상정고금례>에서이다. 여기에 정지(正至)(원단,동지), 절일(節日), 조하(朝賀), 매삭(每朔) 삼대조하(三大朝賀) 등에 착복한다고만 명시되었을 뿐 이에 대한 자세한 제도는 알 수 없으며, 다만 제복에서 송제를 따랐듯이 송제를 따랐거나 공복으로 통용하였으리라 추측될 뿐이다. 송사에 보면, 조복의 구성은 진현관, 초선관, 해치관 등의 양관류에 비라의, 비라군, 백라중단, 비라폐슬, 백라대대, 백라방심곡령, 혁대, 수, 백말, 조리 등이다.
파주 서곡리묘의 고려벽화에 그려진 십이지신의 복식에서도 또 다른 백관 조복의 예를 볼 수 있는데, 파주 서곡리묘의 주인은 고려 말경에 생존한 인물인 권준이며, 그는 삼한벽상공신 삼중대임 길정부원군에 이른 관직자이므로 이 묘에 그려진 복식은 백관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벽화가 그려진 시기를 그가 죽은 1352년도 즈음으로 추정해 볼 때, 표현된 복식이 대략 고려 말경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벽화에 그려진 인물은 양손에 홀을 들고 머리에는 양관류로 보이는 붉은 색의 관을 쓰고 있으며, 매우 넓은 소매의 직령포를 입고 있는데 포 앞으로 홍색 폐슬을 착용하였다. 희미하지만 깃과 수구에 선이 가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고려시대 관료층은 관직제도의 정비와 함께 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물론 고려가 건국되어 광평성, 내봉성, 내의성 등 3성 6부 체제의 근간이 마련되면서 관료층이 형성되지만 역시 관료층이 본격적으로 확립된 것은 성종대에 내사문하성과 상서도성 제도가 성립되면서부터이다. 이것이 문종대에 혹립된 2성체제, 곧 중서문하성과 6부로 구성된 상서성체제의 골격이 된다. 이 관직제도가 확립되면서 고려시대 관료층의 범위와 정원이 정해진다.

이외에 관료층이 형성된 하나의 계기는 광종9년의 과거제 실시이다. 과거를 통해 충원된 관료를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행정적인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당나라의 3성6부제를 참고하여 마련한 제도적 장치가 성종대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의 2성 체제라 할 수 있다.

한편 관료층 가운데는 국가에 대한 공로, 가문의 배경, 왕실과의 혼인 등으로 관료 진출이나 관료생활에서 특권을 누린 상급 관료층도 존재했는데, 이를 문벌이라 한다. 이런 점에서 고려시대 관료의 세계는 조선시대와는 다른 특성을 지닌다.

참고문헌

한국복식사(1998) / 유송옥
우리옷이천년(2001) / 문화관광부(유희경 외)
한국의복식문화(2000) / 백영자,최해율
한국복식문화사(1998) / 유희경,김문자

색측정값
RGBLa*b*NCS
209/59/150/31/333060-Y60R
218/202/14878/2/162010-Y20R
198/168/13269/6/133010-Y40R
애니메이션 표현 Tip

1. 직령포에는 깃과 소매끝 등에 선이 가해졌다.
2. 소매통이 매우 넓어 직립자세에서 무릎 아래까지 부드럽게 늘어뜨려지는 형상이다.
3. 포의 자락이 지면에 끌리도록 길고 풍성하다.

착용특징

양관류로 보이는 붉은 색의 관을 쓰고 있으며, 매우 넓은 소매의 직령포를 입고 있는데 포 앞으로 홍색 폐슬을 착용하였다.

포는 곧은 깃의 직령포이며 오른쪽으로 여며 착용하였다.

허리의 뒷부분 아래로 매듭지은 수를 늘어뜨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