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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유복식고려시대 왕비_공민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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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왕비_공민왕비

구성점

포 치마

관련자료

고려시대 공복을 입은 왕_공민왕
고려시대 귀부인_하연부인
고려시대 귀부인_조반부인
고려시대 미륵하생경변상도의 화관을 쓴 왕비
고려시대 관경서분변상도의 왕비

설명

서울 종묘의 공민왕 사당에 있는 고려시대 공민왕과 왕비 노국공주(魯國公主)의 영정은 고려 말 국왕의 복식을 보여주는 좋은 예로서, 영정 속의 왕과 왕비는 중국 송나라의 복식제도에 따른 것이다.
왕비가 착용한 복식은 화려한 관과 고려시대 여인들이 기본적으로 착용한 저고리와 치마 위에 포를 착용하고 있다. 복장 전체의 실루엣이 왕비의 좁은 어깨선부터 출발하여 매우 우아하게 확장되고 있다. 즉 아담한 어깨 아래로 웅장한 소매 폭과 길게 늘어뜨려지는 치마 길이에서의 강조가 왕비의 위엄을 느끼게 한다.

노국공주는 원나라 종실 위왕의 딸 보타실리이다. 원나라 황제는 보타실리를 노국공주로 봉하여 공민왕과 함께 고려로 보내었다. 공민왕은 일찍부터 공주를 사랑하여 두 사람의 금슬이 좋기로 이미 소문이 나있었다.

고려 중흥의 의지를 갖고 있었던 공민왕에게 심리적으로 크게 타격을 입힌 사건은 왕비 노국공주가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나버린 일이다. 노국공주가 오랜 기다림 후 잉태를 하여 고려왕실이 기쁨으로 가득하던 중, 산일에 이르러 난산의 조짐이 보이자 각 사찰에 기도 드리기 위해 궁중 곡간이 열리고 감옥의 죄수들까지 사면조치 하는가 하면 공민왕은 친히 분향하며 기도를 올렸으나 끝내 왕비는 숨을 거두었다. 공민왕의 절망과 비통함은 매우 커서 노국공주의 진영을 손수 그려 벽에 걸어놓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흐느껴 울었으며, 불사(佛事)를 일으켜 혼제를 지내고 노국공주를 위해 웅장한 영전을 세우는 등 그 폐해가 국정에까지 미쳤다 한다. 생전의 노국공주는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공민왕에게 커다란 용기를 주었던 왕비로 알려져 있다.

참고문헌

한국복식사(1998) / 유송옥
한국생활사박물관08(2002) / 한국생활사박물관편찬위원회
한국복식사(2001) / 안명숙,김용서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1999) / 한국역사연구회

색측정값
RGBLa*b*NCS
240/99/158/31/392060-Y50R
89/54/1141/3/107010-Y10R
241/168/6572/14/402040-Y20R
애니메이션 표현 Tip

1. 복장 전체의 실루엣이 왕비의 좁은 어깨선부터 출발하여 매우 우아하게 확장되고 있다. 즉 아담한 어깨 아래로 웅장한 소매 폭과 길게 늘어뜨려지는 치마 길이에서의 강조가 왕비의 위엄을 느끼게 한다.
2. 포와 저고리의 깃, 소매끝 부분에 원형에 가까운 문양이 일정 간격으로 일렬 분포되어 있다.
3. 치마의 폭이 넓고 지면에 끌리도록 길이가 길어 인물의 움직임이 정적이며 끌리는 치맛자락 일부분에 신의 앞코가 작은 곡선을 그리며 솟아올라 있다.

착용특징

화려하게 장식된 관모를 머리에 쓰고 저고리, 치마 위에 포를 착용하였다.

포 위에 문양이 있는 폭이 넓은 허리띠(감람늑건)를 매었고 허리띠에는 5색의 찬란한 채조로 금방울이나 사향과 같은 향료를 넣는 금낭을 패용하기도 했다.

포는 곧은 깃의 오른쪽 여밈으로 착용하였으며 포 위에는 오늘날의 쇼올처럼 어깨에 표를 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