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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유복식고려시대 면복을 입은 왕_태조 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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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면복을 입은 왕_태조 왕건

구성점

면류관 포

관련자료

고려시대 지장보살도의 원유관을 쓴 왕
조선시대 면복을 입은 왕
조선시대 강사포를 입은 왕_고종

설명

고려시대 왕은 나라에서 지내는 제사, 임금의 성혼, 즉위책봉, 하례를 비롯한 예식 때 등의 특수 의식에 법복으로서 면복(冕服)을 착용하였다.
면복은 고대 중국에서 생겨나 전형적인 한(漢민족의 관복이 된 것으로, 후한(後韓) 때에 대례면복으로 완성되었다. 당대 이후 한민족의 문화권이 광대해짐에 따라 중국 주변 국가에서는 이 면복을 제왕의 관복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이미 면류관에 대한 인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고구려 사신총에 무면류관을 쓴 신인(神人)의 그림이 있고, <삼국유사>에 신라 통일 전의 법흥왕조(條)나 통일 후의 원성왕조(條)에 각각 "면(冕)"의 기록이 있어 면류관의 존재를 알려 주고 있다.

고려왕조에 들어와 광종대의 복제에 면복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확실한 증거는 없으며, 고려 정종 이후 료(遼), 금(金), 송(宋)으로 부터의 사여 이후 착용했을 가능성이 보여진다. 면복에 대한 송의 공식적인 승인이 있은 것은 제 17대 인종 때였으며, 우리나라 면복의 규모는 <상정고금례>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구류면, 구장복이다. 공민왕 때에는 원에서 벗어나기 위한 복구적 중흥정치와 자주성의 발휘로 잠시 십이류면, 십이장복을 착용하기도 하였으나, 명 성립 후로는 중국 친왕례에 준하여 줄곧 구류면 구장복을 착용하였다.

면류관은 면판과 면류관으로 구성되었으며, 청색의 '진'과 '광'을 귀 곁까지 드리우고 청색의 조영(組纓), 굉(紘)을 늘어뜨렸으며, 또한 서잠도(犀簪導)까지 꽂았다. 면복에 있어서의 의복을 곤복(袞服)이라고 하며 의(衣), 상(裳), 중단(中單), 폐슬(蔽膝), 혁대(革帶), 패옥(佩玉), 대대(大帶), 수(綏), 말(襪), 석, 규(圭)로 구성된다.

고려 태조 왕건은 면복으로서 앞이 숙여진 현색 면류관을 쓰고 상복과 유사한 포를 착용하고 있다. 면류관 착용으로 미루어 볼 때, 면복이라 할 수 있겠으나, 옷의 색이 현색이 아니고 상복과 유사한 보(補)를 부착한 포를 착용한 것으로 보아 고려 초기의 면복은 이러한 형태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복식사(1998) / 유송옥
한국복식사(2001) / 안명숙,김용서
한국복식사(1999) / 김영숙,김명숙
우리옷이천년(2001) / 문화관광부(유희경외)

색측정값
RGBLa*b*NCS
0/0/025/0/09000-N
229/187/12375/8/232020-Y30R
77/0/030/17/46030-R10B
229/181/6973/9/402040-Y10R
255/252/22993/1/40502-Y50R
애니메이션 표현 Tip

1. 면류관에서 면판은 견고한 재질로 이루어졌으며, 앞뒤로 매달린 9줄의 12옥이 인물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린다.
2. 전체 실루엣이 어깨에서부터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중후함을 표현한다.
3. 포의 자락이 지면에 끌리도록 길고 풍성하다.

착용특징

현색 면류관을 쓰고 상복과 유사한 단령포를 착용하고 있다.

면류관은 양옆의 끈을 턱밑에서 잡아 매듭을 지어 고정하였다.

두손을 마주잡아 공수(拱手) 자세를 취하고 소매 위에 흰색의 직물을 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