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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개방과 포용의 나라

통일신라(AD669~935)는 당의 제도를 모방해 제반 제도의 개편을 단행하여 중앙집권적 체제를 완성하였고, 문화면에서도 고유문화와 중국문화를 잘 융합하여 찬란한 민족문화를 이룩하였다. 통일 후, 신라의 문화가 더욱 원숙해짐에 따라 복식에 있어서도 많은 발전과 변화가 있었던 반면, 사치와 문란이 극에 달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에 제 42대 흥덕왕9년에 복식 금령(服食禁令)이 내려지게 되는데, 이는 신분을 10개로 나누고 그에 따른 복식을 크게는 12종류, 세부적으로는 20종류로 분류해 복식의 착용범위를 구분한 것으로 심지어는 버선 끈과 머리핀까지 언급될 정도로 아주 세세하게 열거하고 있다. 이러한 복식금제는 신분을 구분하기 위함과 동시에 극도로 사치스럽고 문란한 복식문화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또한 이것은 당시에 얼마나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호화롭고 아름다운 복식문화가 발달했었는지를 짐작케 하는 것이기도 하다.
삼국시대까지의 복식이 고유복식 형성기라고 한다면, 통일신라는 외국문물에 적극적으로 접하게 되는 ‘복식의 변혁기’라고 할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복식은 대체로 삼국시대와 유사하나 무열왕, 문무왕 이래 친당정책이 복식에 영향을 미쳐 복두, 단령, 반비, 배당, 표 등과 같은 삼국시대에는 없었던 새로운 복식이 등장하였다.
통일신라의 복식과 장신구는 기록물 외에도 황성동 석실고분이나 용강동 석실고분 등에서 출토된 토우(土偶) 등을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

참고문헌
유송옥(1998) 한국복식사 / 유희경,김문자(1998) 한국복식문화사
안명숙,김용서(1998) 한국복식사 / 문광부(2001) 우리옷이천년